동국대 총동창회
 
 
 
이력서마다 ‘동국대학교 졸업’ 써놓고 “모교 위해 뭘 했나” 자책하다
  • 최고관리자 | 2018.03.06 14:46 | 조회 593

    동문관계는 따뜻하고 언제라도 함께할 수 있는 ‘가까운 사이’


    모교에 장학금 외 예술작품 312점 기증 약속


    지난 2월20일 모교 2018 봄학기 학위수여식에서는 권오춘(59영문)동문에게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권 동문은 2004년 서울 양재동 소재 오피스텔 5채를 모교에 초허당(권동문의 호) 기회장학금으로 기증하고, 2006년에는 용인시 소재 건물과 토지까지 기부하는 등 총 26억 1천만원을 모교 발전기금으로 출연하였다.

    또한 최근에는 37년간 예술가들에게 82억원을 후원하며 수집한 도자기 등 예술작품 312점을 모교에 기증하기로 약속했다.


    지난 2월23일 권 동문의 거주지인 용인시 양지면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동국에 대한 애정과 그의 인생관을 들어 보았다. 보통 박사학위를 받으면 6개월정도는 박사로 호칭해주어야 한다는 예법(?)이 있다고 해서 ‘선배님’보다는 ‘박사님’으로 부르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권 동문의 파란만장한 인생, 그가 궁구한 인간탐구에 대한 설명은 2시간으로도 부족했다.


    처음엔 탐명(貪名)같아 학위 제안 거절했다.


    모교는 학위를 수여하면서 권 동문을 가르켜 ‘깨어있는 철학가’ ‘행동하는 사상가’ ‘사유하는 실천가’로서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권 동문은 1980년 초허당 창작지원기금을 출연하여 ‘가난한 예술가들의 대부“라는 별칭도 얻고 있다. 2004년 예술의전당후원회 무궁화 영구회원으로 가입하고 후원회 이사, 운영위원, 자문위원을 역임하며 우리니라 문화예술의 융성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먼저 명예박사학위 영득을 축하드립니다. 저도 모교 학위수여식에 참석하여 지켜보았습니다만 학교당국의 학위수여 취지서나, 또 박사님의 답사인 감회문을 듣고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모교 한보광 총장님으로부터 처음 학위수여 제안을 받았을 때 “내가 오랫동안 궁구해온 ‘인간탐구’ 경계 중의 하나인 탐명(貪名)에 해당되어 받을 수 없다. 명예를 탐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극구 사양했었다. 그런데 총장께서 “탐명은 본인의 어떤 요구가 수반되는 행위이지만 이 학위는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학교와 후배들이 드리는 것이므로 탐심이 아니다”라며 설득하는데 그만 말문이 막혀 나의 마음 공부의 새로운 과제로 삼기 위해 받아들였다.


    -학위 받으신 자리에 가족들이 안보여 궁금했습니다.


    내 인생관에서 보면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안 알렸고, 학교측에도 소문나지 않게 조용히 받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언젠가는 알려질 일일 것 같아 오늘 새벽에 큰 누나를 비롯 몇 지인들에게 학위취득 소식과 함께 관련 사진들을 핸드폰으로 알려주었다.




    나의 기부는 후배들에게 기회 주는 일


    -박사님은 우리 동국가족들에게 검소하고 소박하지만 나눔에 있어서는 아낌이 없는 진정한 마음의 부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모교에 장학기금을 기부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나 아닌 것은 모두 봉사의 대상이다. 공기, 물, 심지어는 이름없는 모든 동식물까지도 해당된다. 나의 기부는 돈이 아닌 ‘기회’를 주는 일이다. 모교 장학금에 앞서 예술계를 지원했다. 창작의 능력과 열정은 있는데 생활고 때문에 포기하는 이들이 많아서였다. 그러던 중 언젠가 한 신문에서 장학관련 기사를 보게 되었고 나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고학하느라 온갖 고초를 겪었던 시절이 오버랩됐다. 그래서 2004년 겨울 모교를 노크했다. 모교 기부금 담당선생과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석조관(현 명진관) 앞 계단에 앉아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필요로 할때는 이력서에 ‘동국대학교 졸업’이라고 빠짐없이 써놓고 “그동안 내가 모교를 위해 한 일이 무엇이 있었나”하는 자책이 일었다.


    양재동 오피스텔 5채 기증 … 항구적 장학금 토대


    모교를 잊고 탕아처럼 떠돌다가 그 품안에 돌아오니 포근함으로 감정이 복받쳤다. 내가 강의를 들었던 석조관이며, 도서관에서 불을 밝히는 후배들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내가 늦게라도 어머니같은 모교를 찾아온 것이 정말 잘했다고 느꼈다. 그래서 힘 닿는데까지 모교를, 아니 후배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성적은 낮아도 생활 형편이 어려운 지방 출신, 그리고 “기초과학이 튼튼해야 다른 학문이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이과계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기꺼이 출연했다.


    장학금은 양재동 오피스텔 5채에서 나오는 임대수익으로 항구적으로 지급된다. 재산은 동파이프 총판사업 등을 통해 일구었다.


    ‘변화하기’ ‘먼저하기’ ‘헌신하기’를 덕목 삼아


    -학위 수여식장에서 박사님이 반평생을 궁구한 인간탐구 강론 중 ‘반드시 실천해야 할 삶의 구현’ 편을 3가지로 축약해서 말씀하셨는데 그 내용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날 참석하지 못한 동문들을 위해 다시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변화하기’ ‘먼저하기’ ‘헌신하기’이다. R.M 릴케는 말테의 수기서 “내가 변화하면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다”라고 했다. 과거의 나는 내일의 나를 만들 수 없다. 지금 변화해야 내일의 새로운 나를 만들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살아지는 삶’은 패배자가 된다. ‘변화하기’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음으로 ‘먼저하기’는 따라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하여서는 선진대학도, 선진국가도 될 수 없다. H.W 롱펠로우는 ‘인생찬가’에서 “행동하라. 살아있는 현재속에서 행동하라”고 말했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내가 먼저 가고, 남이 상상 못하는 것을 내가 먼저 상상하고, 남이 하지 않는 일을 내가 먼저 해야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헌신하기’인데 자기를 남김없이 태워 불꽃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내가 생각하는 불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다. 모두가 헌신의 불꽃이 되어 장렬하게 폭발해야 한다. 그 폭발이 연이어 터져 들불처럼 번질때 우리 사회는, 세상은 아름답고 살맛나는 평화의 세계가 된다는 믿음이다.


    “어둡다고 현실에 좌절하지 말라”


    -이번에는 재학생 후배들,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말씀해 주십시오.


    한마디로 “현실에 좌절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인생은 원래 ‘안되게 되어있는’ 구조이다. 이 안되게 되어 있는 구조를 ‘되게 하는 것’, 즉 만들어 가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0.1%를 1%로, 그 1%를 2%, 10%, 100%로 만들어가야 한다. 요즘 금수저, 흑수저 하는데 나는 손수저라고 자처한다. 가령 100m 달리기를 한다면 금수저는 이미 90m 정도 앞서서 출발하고, 흑수저는 10m부터 40m이하 선상에서 달리는 격이다. 그런데 손수저인 나는 오히려 -10m에서 시작한다. 골인 순서는 당연히 금수저, 흑수저 순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금수저는 10m 앞만 보고 뛰었기 때문에 뒤에 숨겨져 있는 복잡다단한 희로애락 과정을 간과한다. 흑수저도 출발선에 따라 경험의 차이를 느끼나 맨 밑바닥까지는 다 볼수 없다. 손수저는 골인지점까지 가기 위해 온갖 장애물을 만나 부딪힌다. 금수저와 손수저를 달리 말하면 메뚜기는 뛰고 지렁이는 기어가는 거와 같다.


     체험에서 나온 지혜와 생존본능이야말로 자기자신을 살찌우는 가장 큰 무기이다. 본래 태어날 때 빈손으로 오고, 떠날 때도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최소한의 부끄럽지 않게 사는 삶이 낫다고 본다. 불가능은 새로운 기회다. 편리한 조건을 선택하지 않기를 당부하고 싶다.


    어디서든 모교를 잊어진 안돼


    -우리 동문들이나 동창회에는 어떤 말씀을 해 주시겠습니까?


    수 많은 동문들 가운데는 훌륭한 선후배도 많다고 본다. 어디에, 어느 형편에 있던 간에 기본적으로 모교를 잊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대학 졸업후 첫 직장으로 명지대학 사서과 경력직원으로 들어갔다. 그때 그곳 교수로 재직중인 김성배(49국문, 전 동국대 사범대학장) 이상보(50국문, 전 명지대 대학원장) 두 선배님이 나를 따로 불러 격려해 주셨다. 동문 선배의 따뜻한 정이 고마워 눈물까지 났다. 선후배 관계란 “바로 이런거구나”하고 감회가 남달랐다. 모교에 대한 애정은 그때부터 가슴속에 잠재적으로 남아 있었던 것 같다.


     2004년 모교에 장학기금을 출연하고 나서는 그 뒤 2007년 총동창회에도 장학금을 보탠 적이 있다. 그리고 얼마 안되어 교통사고를 당해 치료하느라 10여년간 지리산 초야에 묻혀 지내왔다. 총동창회 소식은 동창회보를 통해 세세히 듣고 있다. 지금 잘해 나가고 있는데 뭐라 딱히 할 말이 없다. 동창회는 동문들의 자화상이다. 모교를 사랑하는 만큼 동창회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으면 한다.


    내가 가장 갈망하는 목표가 내 호(號)가 되었다


    -화제를 좀 바꿔보겠습니다. 박사님 명함을 보니 호(號)가 독매(獨呆)이더군요. 명함 뒷면에는 “세인찰찰 아독매매(世人察察 我獨呆呆), 세인들은 견주고 살펴서 모두 똑똑한데 나만 홀로 우둔하고 답답하고 어리석네”라고요. 저는 여태 초허당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호(號)가 바뀐 건가요?


    내 경우에는 호를 스스로 짓고 내 마음 공부의 목표로 삼아왔다. 가장 갈망하는 화두가 호가 된다.

    그래서 내 나이 연대별로 호가 각각 다르다. 40대 때는 어둡고 더럽혀진 허물을 걷어내겠다며 세묵(洗墨)을 썼다.


     50대 때는 천치 바보라는 뜻의 치백(痴白)을 썼는데 중국의 한 학회에 갔다가 돌아와서 바로 없애버렸다. 그 곳 학자들과 명함을 교환하는데 나이가 나보다 1∼20년쯤 많은 분이 내 명함을 보자마자 갑자기 업드려 큰 절을 올리길래 나도 엉거주춤 맞절을 했다. 나중에 통역한테 물었더니 백치는 최고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쓰는 거였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가훈 가운데 ‘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사자성어가 있는데 ‘어리숙하게 보이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다’라는 의미와 상통하다는 걸 알았다. 공자 앞에 문자 쓴 격이 되었으니 너무 부끄러워 귀국하는 즉시 아예 호를 지워버렸다.


    그러고 나서 5, 6년을 방황하며 지내다가 한번은 산책길에 잡초를 밟고 나서 갑자기 멈추고 그 자리를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게 밟혔던 풀이 누웠다가 다시 일어났다. 이를 보고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극복해나가겠다는 뜻에서 ‘초허당(草墟堂)’ 을 새로운 호로 지었고 70대까지 이름앞에 붙였다.


    지금의 ‘독매’는 80대에 정한 것으로 ‘내 홀로 바보’라는 뜻이며 여전히 탐구 대상이다.


    내가 궁구한 ‘인간탐구’ 외부 강의 계속


    -박사님의 요즘 근황이 궁금합니다.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나는 밤12시쯤 취침에 들어가 오전 3시쯤 일어난다. 아주 오래된 습관이다. 일찍 일어나는 이유는 그 시간이 정신적으로 가장 맑아 총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기상해서는 돌아가신 부모님께 먼저 심고(心告, 마음으로 소통함)하고 그 날 할 일을 점검하여 최선의 결정을 정리한다. 이후에 책을 읽고 인간탐구에 대한 공부라든가 외부강의를 준비한다. 외부강의는 예전에는 주로 학교나 기관, 단체 요청를 받아 ‘인간탐구 강론’을 설파했다.


    요즘은 나이(83세)도 있고해서 소모임을 대상으로 간헐적으로 무료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36개 강론중 수강자의 성격에 따라 1개 강론을 정하는데 한가지 수업하는데만 3시간이 걸린다. 건강은 따로 운동하지 않고 소식(小食)위주로 살고 있다.


    저서 출판은 “더 이상 공부 안하겠다”는 선언이다




    -앞서 말씀하신 ‘인간탐구 강론’을 책으로 저술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책을 낸다는 것은 “내가 배우고 연구한 지식과 학문의 진수를 대내외적으로 발표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내가 이룬 것은 이것이 전부다. 책으로 묶으면 더 이상 공부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현실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고, 그 변화에 따라서 학문의 깊이와 넓이도 가늠할 수 없다. 특히 인간학은 매우 세심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책을 낸다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이다.

     

    -요즘은 무슨 책을 읽고 계십니까?


    오래전에 읽었던 노자의 양명학을 다시 꺼내 읽고 있다. 중국 송나라 때 주자(朱子)에 의해 확립된 성리학(性理學)의 사상에 반대하여 명나라 때 왕양명(王陽明)이 주창한 학문으로 지행합일설이 요체이다. 지행일치(知行一致)는 나의 생각과 비슷하다. 아는 즉시 행동하는 삶, 깨어 있는 삶, 살아가는 삶, 노력하는 삶에 나의 인생을 걸고 있다.


    내가 번 돈은 공익에 기꺼이 동참한다


    -마지막으로 가족관계와 살아오시면서 롤모델이 되었던 사람은 어느 분이셨나요?


    가족은 부인과 3녀1남이다. 보통은 1남3녀라고 하는데 나는 태어난 순서대로 말한다. 자녀들은 모두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주변에서 자식들에게 얼마나 물려주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필요한 만큼만 주고 있다. 부모가 모은 돈은 부모의 돈이지 자식의 돈이 아니다. 부모가 가진 돈을 왜 자식한테 다 물려줘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그 돈을 남이나 공익, 학교 등에 기부하는데 기꺼이 동참하고 있다.


    그리고 내 인생의 롤모델이라고 물었는데 크게 영향을 준 사람은 글쎄(?). 다만 씨알의 소리를 창간한 함석헌은 투철한 신념을 가진 실천적 사상가로서 존경했었다. 나는 내 의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1원, 1초를 우습게 보면 성공할 수 없다. 천원이던 1억이던 간에 1원부터 시작된다. 로또로 부자된다는 생각은 아예 버려야 한다. 피땀 흘려야 돈을 벌고, 구두쇠가 되어야 돈을 모을 수 있다. 그래야 한번 뿐인 인생, 함께 사는 세상에 나눔으로써 미련이 없아야 한다.

    일시 : 2월23일 낮12시

    대담 : 신관호 본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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