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총동창회
 
 
 
국내 첫 출판박물관 30주년 맞은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 관장
  • 최고관리자 | 2020.12.24 14:05 | 조회 1318

    “다들 도자기 살때 古書 모아… 국보·보물만 9점”


    “일찌감치 출판박물관을 설립하겠다 선언하고 닥치는 대로 사 모았지요. 팔만대장경, 금속활자 같은 세계적 인쇄·출판 문화 전통을 가진 우리나라에 출판박물관 하나 없는 게 이상하잖아요.”








    ‘책으로 걸어온 길’이란 포스터를 손으로 가리키며 김종규(81) 삼성출판박물관장이 말했다. 서울 구기동에 있는 삼성출판박물관이 올해 개관 30주년을 맞았다. 1990년 서울 당산동에서 우리나라 첫 출판박물관으로 개관해 2003년 이전했다. 전적류, 근현대 도서, 고문서, 포스터, 출판·인쇄 도구 등 소장품 10만여 점.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 등 국보·보물만 9점이다.

    고서적 수집을 시작한 건 형 김봉규(89) 삼성출판사 창업 회장의 영향이 컸다. 삼성출판사 부산지사장을 맡은 1965년부터 보수동 골목 헌책방을 드나들며 희귀 고서를 수집했다. “6·25 때 피란 오면서 귀한 책을 챙겨온 사람이 많았다”며 “당시 고미술 수집가들은 서화·도자기에만 관심 있지 책은 관심이 덜했다”고 했다. 좋은 고서가 나왔다는 연락이 오면 달려가고, 정년을 맞은 교수의 책들을 일괄 인수하기도 하면서 컬렉션을 조금씩 늘려나갔다.



    지금 한글 특별전 ‘ㄱ의 순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2층에도 그의 수집품이 나와 있다. 한글 창제 직후인 1459년(세조 5년) 간행된 부처의 일대기 ‘월인석보’(권 23·보물 제745-8호). 불교 서적을 한글로 번역한 최초의 책이다. 또 다른 ‘월인석보’ 한 점(권 22·보물 제745-7호)과 ‘석보상절’ ‘동몽훈’까지 넉 점을 선뜻 대여했다. 그는 “훈민정음 탄생의 순간을 담은 전시 공간에서 현대미술과 어우러져 묵향(墨香)을 발산하는 우리 유물들을 보니 흐뭇했다”고 했다.

    “박물관은 한 나라 문명의 척도”라는 게 평소 지론이다. “30년 끌고 오는 동안 왜 힘든 게 없었겠나. 사립박물관 운영은 안목과 사명감, 재력 없이는 힘들다. 다행히 내가 이 세 가지를 갖고 있어 행운”이라며 “이 세상 왔다가 한 가지는 하고 간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문화계 대부(代父)’ ‘문화계 마당발’로 불린다. 팔순 넘은 지금도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각종 문화계 행사에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으로 유명하다. 그는 “형 김봉규 회장과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내 인생에 길을 내준 고마운 두 분”이라고 꼽았다.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되려면 2000년대까지 박물관이 1000개는 돼야 한다”는 이어령 장관의 말을 듣고 박물관 설립을 앞당겼다고 했다. ‘김봉규·종규’ 형제간 우애는 출판계에서 회자될 정도로 끈끈하다. 토종 캐릭터 애니메이션 ‘핑크퐁 아기상어 댄스’로 지난달 유튜브 조회 수 세계 1위에 오른 김민석 스마트스터디 대표가 김봉규 회장의 손자다. “지금도 고서 수집은 계속하고 있어요. 죽어야 끝이 나지요(웃음).”

    개관 30주년 특별전 ‘책으로 걸어온 길’(29일까지)엔 그간 개최했던 특별전 전시품 중 대표작을 선별해 내놨다. 이인직의 ‘은세계’(1908), 유길준의 ‘서유견문’(1895), 무용가 최승희의 ‘최승희 자서전’(1937), 여성 작가 최초의 신문 연재 장편소설인 박화성의 ‘백화’(1943) 등 희귀본을 다수 볼 수 있다.

    [조선일보 12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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