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총동창회
 
 
 
“경무대로 가자” … 동국대 없었으면 4·19는 없다
  • 최고관리자 | 2019.05.24 12:07 | 조회 1813

    동국대학교프래카드 앞세우고 부정선거 다시하라외쳐

     

     

    윤 청 광 (59영문)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 이사장, <고승열전> 방송작가

       


    4·19혁명 이끈 방아쇠 - 그 공적 과소평가되어 안타까워

     

    찬란한 미래를 위해 동국대, 앞으로 !”

       

     이 땅에서 부정과 부패를 몰아내고, 이 땅에서 무자비한 독재정치를 끝장내기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나 검은 아스팔트를 붉은 피로 물들였던 4·19민주혁명이 일어난지 어언 59.

    4·19민주혁명의 그 숭고한 정신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지키는 자랑스러운 구심점이 되어 왔다.

    그런데 저 무지막지했던 자유당 독재정권을 이 땅에서 무너뜨리고 이 땅에 참된 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한 4·19혁명을 결정적으로 이끈 동국대의 공적이 너무 과소평가되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필자는 19604·19당시 <동대신문> 학생기자로 처음부터 끝까지 데모에 참여했기에 그 날의 울분과 그 날의 분노와 그 날의 함성, 그리고 그 날의 참상을 아직도 낱낱이 기억하고 있다.

    3·15 부정선거와 마산 데모진압 사건, 그리고 4·19 하루 전날 일어난 고려대 데모대 피습사건으로 419일의 학생 데모가 일어났다.

    그러나 419일 오전부터 시작된 이날의 학생데모가 처음부터 자유당 정권의 타도이승만의 하야’, 그리고 이승만의 추방을 목표로 삼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 당시 데모대의 주된 구호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악질 경찰 물러가라!

    -정부는 마산사건 책임지고 물러가라!

    -·부통령 선거를 다시 하라!

    -학원의 자유를 보장하라!

     

    그런데 동국대의 3천 데모대가 을지로4가를 거쳐 을지로 입구 내무부 앞에 이르러 보니 거기에는 이미 축산대학생으로 기억되는 타 대학 데모대가 연좌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이에 동국대 데모대는 내무부 앞에서 경찰 저지선을 거침없이 무너뜨리고 시청 앞으로 돌진했다. 그러나 시청 앞에도 이미 다른 대학 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이 데모를 벌이고 있었으므로 동국대 데모대는 시청 앞에 잠시 머물다가 당시 국회의사당 앞으로 돌진했다. 그런데 국회의사당 앞에도 이미 <서울대학교>의 깃발을 든 데모대가 연좌농성을 하면서 자유당 정권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이때 국회의사당 앞,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서울신문 앞 도로 위에는 동국대, 서울대 데모대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 청소년, 고등학생들까지 뒤섞여 저마다 규탄 구호를 외치는 통에 그야말로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동국대 데모대 가운데서 누군가가 크게 외쳤다.

    동국대는 경무대로 가자!”

    바로 이 한마디가 울려 퍼지자 마자 모두들 환호하며 주먹을 불끈 쥐고 치켜들었다.

    가자! 경무대로!”

    대통령과 담판하자!”

    우리는 경무대로 간다! 동국대 앞으로!”

    <동국대학교>를 알리는 붉은 깃발이 장대 끝에 메달려 하늘 높이 펄럭이며 앞장을 서자 동국대 데모대는 성난 파도처럼 경무대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옛 총독부 건물, 중앙청 광화문 앞 도로 위에는 무장 경찰들이 제1차 방어선인 바리케이트를 치고 동국대 데모대를 향해 최루탄과 붉은 물대포와 공포탄을 무차별 발사했다. 그러나 동국대 데모대 뒤에는 이미 서울대 데모대와 만여명이 넘는 엄청난 민중데모대가 뒤따라와 경찰의 1차 방어선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때가 오전 1113분경이었다.

    이어 동국대 데모대는 더욱 기세를 올려 왼쪽으로 기수를 돌려 해무청 앞에 이르렀다. 그러나 해무청 앞에는 제2차 경찰 방어선인 바리케이트가 설치되어 있었고 경찰과 동국대 데모대는 일촉즉발의 대치 상태를 이루고 있었다.

     

    동국대 데모대는 해무청 앞에서 연좌데모, 태극기를 높이 들고 애국가를 합창하며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계속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아 대 데모대 가운데 부상자가 속출하고 여기저기서 데모하던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아스팔트 위에 낭자한 피를 보자 우리 동국대 데모대는 때마치 근처 도로공사장에 널려 있던 돌맹이를 경찰들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최루탄, 물대포, 연막탄의 무차별 사격과 데모대의 투석전이 한동안 격렬하게 전개되는 사이 일부 데모대 가운데 결사대가 멀리 도로를 돌아 통의동 경찰 저지선의 후방까지 돌진했고, 이때 통의동 파출소가 화염에 휩싸였다.

     

    그러자 위기를 느낀 경찰은 경무대 쪽으로 후퇴하면서 일제히 실탄 사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에 격노한 데모대는 소방차 2대를 빼앗아 후진으로 경무대를 향해 돌진했고, 수 많은 동국대 데모대와 다른 데모 군중들이 효자동에 멈춰있던 빈 전차를 점령, 전차를 뒤에서 밀고 진격, 경무대를 향해 3차 저지선을 뚫고 돌격했다. 그러나 이때 계엄령이 선포됐으니 학생들은 돌아가라고 경찰들이 외치면서 다급해진 경찰들이 데모대를 향해 적군과 전쟁이라도 하는 듯 무차별 총격을 퍼부어 효자동, 통의동 일대는 그야말로 피바다를 이루었고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4·19학생데모는 데모의 수준을 뛰어넘어 처참한 참극을 빚었고 그 참극으로 인해 결국은 자유당정권이 무너지고 이승만 독재정부가 이 땅에서 쫓겨나는 <4·19민주혁명>이 될 수 있었다.

     

    그날, 전국 방방곡곡에서 학생데모가 일시에 일어났지만, 내무부 앞이나 시청 앞이나 국회의사당 앞에서 연좌농성이나 하면서 학원의 자유를 달라”, “마산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라”, “·부통령 선거를 다시 하라고 아무리 외쳤더라도, 그 것은 그야말로 <대규모 학생 데모>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국회의사당 앞에서 경무대로 가자!”고 외친 동국대 데모대의 그 한마디가 결국 저 위대한 <4·19민주혁명>의 방아쇠를 당긴 셈이었고 <동국대학교>의 붉은 깃발을 앞세워 동국대 앞으로!”를 외치며 경무대를 향해 돌진한 동국대 데모대야말로 <4·19민주혁명>을 달성한 전위대였다.

     

    세종로, 광화문을 뒤로하고 가자! 경무대로!”를 외친 동국대 데모대.

    1, 2, 3차 경찰의 바리케이트를 무너뜨리고 경무대를 향해 투석전을 벌이며 목숨을 걸고 통의동, 효자동, 경무대 코앞까지 돌격했던 그 날의 최선봉 동국대 데모대.

    그러나 59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동국대 데모대의 그 숭고한 용기와 희생과 공적은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채 잊혀져 가고 있으니, 이 얼마나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인가!

     

    <4·19>를 평범한 학생데모에서 <4·19민주혁명>으로 이끈 것은 바로 동국대학교 데모대가 외친 그 말 한마디,

    경무대로 가자!”였다.

    그날 그 자리에 동국대가 없었고, 그 말 한마디가 없었다면 <4·19혁명>은 없다.

    가자! 경무대로!”

    동국대는 경무대로 간다!”

    동국대, 앞으로!”

     

    그날 외치던 그 절규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거늘, 나의 자랑스런 모교, 동국대여, 우리 다시 돌격하자!

    찬란한 미래를 향해 동국대,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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