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의 추천으로 195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민영 시인은 ‘무등을 보며’를 택했다. 여든을 넘긴 시인은 “스물 두세 살 적 선생님을 찾아가 무작정 시를 가르쳐 달라고 했던 게 아직도 기억 난다”며 “지금은 나이가 들어 눈물이 말라 버렸지만 처음 돌아가셨을 땐 그저 엎드려 우는 것 외엔 재주가 없었다”며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내비쳤다.
문정희 한국시인협회 회장은 ‘꽃밭의 독백’을 낭송하다가 감정이 복 받친 듯 잠시 중단했다가 말을 이었다. “시인은 육신이 죽었다고 해서 죽는 게 아니라 시가 살아 있는 한 영원히 산다고 생각합니다.”
노래 공연도 이어졌다. 서도소리 ‘배뱅이굿’의 전수자인 박정욱 명창은 미당의 시 ‘신부’를 국악 가락으로 옮겨 이날 초연을 했다.
‘신부’는 1975년 출간된‘질마재 신화’ 맨 앞에 수록된 시로, 첫날밤 소박을 맞은 신부가 신랑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재로 화하는 이야기다. 박 명창은 올해 안에 ‘질마재 신화’에 실린 시편들을 공연물로 재탄생시킬 예정이다.
소리꾼 장사익씨는 ‘저무는 황혼’을 가사로 쓴 동명의 곡을 노래했다. 장 씨는 “세상을 노래하는 건 시인이고 나는 그저 창자(唱者)일뿐”이라면서 “시인들 앞에서 노래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며 웃었다.
이날 공연은 동국대학교와 사단법인 미당기념사업회가 미당 탄생 100주년을 맞아 개최하는 여러 기념 사업 중 첫 번째 행사다. 동국대 전략홍보실 측은 미당의 기일인 12월 24일까지 다채로운 행사를 선보일 계획이다.
1915년 5월18일 전북 고창에서 태어난 미당 서정주는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으로 등단했다. 김동리, 오장환, 김광균 등과 함께 ‘시인부락’을 창간하며 활발한 창작활동을 벌였다.
‘선운사 동구’ ‘국화 옆에서’ 등 뛰어난 작품을 남기며 “우리말의 가장 아름다운 꼴”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나, 1940년대 남긴 친일 성향의 시와 80년대 쓴 전두환 찬양시로 문단 안팎에서 많은 공격을 받기도 했다.
관악구 남현동의 봉산산방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2000년 10월 10일 부인 방옥숙 씨가 별세하고 얼마 뒤인 12월24일 세상을 떴다.
한국일보 황수현기자 sooh@hk.co.kr [201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