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총동창회
 
 
 
대구 대관음사와 경주 감포의 세계 명상센터 세운 주인공 - 무일 우학 스님
  • 최고관리자 | 2023.11.02 10:08 | 조회 598
    대구 대관음사와 경주 감포의 세계 명상센터 세운 주인공 - 무일 우학 스님

    “모교는 세계적 석학, 총동창회는 친목과 교류 활성”

    경북 경주시 감포읍 회곡길 연대산 골짜기에 있는 BUD(‘Budist University 대관해’약칭) 세계명상센터는 독특한 영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명상센터 초입에는 아름다운 환영대관음상이 찾는 이를 맞이하고, 산위로 가는 성불관 건물에는 커다란 사색하는 모습의 금불상이 있고, 좀더 위로 올라가면 길이 55m, 높이 약 8m의 와불상이 찾는 이를 압도한다. 멀리 산밑에는 약 10층 석탑쯤 되는 탑이 건물위에 우뚝 솟아있고, 무일선원 무문관에는 부처님 고행상이 자리잡고 있다. 
    가장 위쪽 대웅전에서 바라보는 시야 앞으로 눈시린 동해바다가 훤히 펼쳐져있다. 뷰가 뛰어난데다, 독특한 불교적 분위기가 풍겨 저절로 영성 감흥에 젖게 한다.



    무일 우학스님은 명상센터를 찾은 취재진을 친히 이곳 저곳을 안내했다

    대나무 숲이 우거진 사색로를 걷는데 대나무의 굵기가 코끼리 다리만큼이나 굵고 키는 10m를 넘어보였다

    우학 스님은 거제도에서 대나무를 옮겨왔다고 소개하고, “대나무 숲이 청정하고 영성을 불러일으킨다고 덧붙였다

    사색로 주변에는 온갖 꽃나무와 유실수가 있는데 농약을 치지 않으니 열매들이 신통찮다

    수행하는 수행자들이 따먹도록 기르고 있다고 했다.


    스님과의 인터뷰는 10만평이 넘는 명상센터 곳곳을 걸으며 진행됐다. 사무실에서 차 한잔 나누며 갖는 인터뷰가 아니라 사색로를 걸으며 갖는 인터뷰라서 신선감을 주었다. 토굴 공사와 법당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금년말이면 모두 완성된다고 했다.

     

    -스님은 모교 불교대 선학과 84학번이시지요? 그에 앞서 한의학과 79학변으로도 입학하셨더군요.


    그렇습니다. 한의학과에 다닐 때는 출가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일로 고뇌 끝에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경북 지역 명문 경주고를 졸업하고, 79년 당시 의예과 못지않은 우수학생이 입학하는 모교 한의학과에 진학했다. 그런데 30대의 삼촌이 갑자기 사망한 일이 생겼다. 삼촌이 몸살이 나서 영양제를 한 대 맞겠다고 시내 나가서 링거 약을 사오라고 그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스님은 자전거를 타고 시내 약국에서 주사약을 사와 마침 알고 지내는 이웃의 군종병(軍宗兵)에게 주사를 놓아달라고 했는데, 주사를 맞던 삼촌이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더니 쇼크사하고 말았다. 그 충격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군종병이 주사액을 과잉 투약한 것이 사인이 아닌가 했지만, 내가 주사약을 사왔으니 심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지요. 무너지는 후회와 죄책감과 함께 생과 사에 대한 번민이 뒤따르더군요. 육신의 생명이 죽으면 어디로 갈까, 영혼의 정처는 어디일까, 이런 문제에 직면하면서 결국 출가하게 되었지요.”

     

    -그렇더라도 누구나 선망하는 한의학과를 버리고 선학과에 입학하면서 후회되지는 않았나요.


    영혼의 존재를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근원을 추구하는 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거리낌없이 한의학과를 자퇴하고 출가했어요. 무일선원의 무문관에서 1000일간 면벽수행을 했습니다. 스파르타식 면벽수행이었지요.”

     

    -재학 시절의 추억들을 되새긴다면?


    내가 대학에 다닐 때는 군부정권 퇴진 시위가 한창이던 때였습니다. 80년대 중반, 온통 전두환 군부정권 퇴진 시위가 대학사회에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학생지도부는 아니었지만 행동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더군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의미였습니다.”

    그러면서 대학생 법회 활동을 꾸준히 진행했다. 고려대의대 학생회와 홍익대 불교학생회 등과 연계해 수련회 등 불교활동을 벌였다.

     

    스님은 대학 졸업후 이같은 불교정신으로 1992년 대구 남구 중앙대로에 대관음사를 차렸다. ‘무덤에서 요람까지라는 말 그대로 불교대학까지 갖춘 큰 규모다. 생활 속으로 들어가 포교활동을 벌인 결과 수많은 불자들을 확보했다. 그는 일상 속 불교의 힘을 중시하며 대중과의 소통을 강조한다. 세상이 변하면 종교도 시대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는 소통론을 갖고 있다. 즉 현실 생활에 맞는 맞춤형 설법이 중생을 끌어모으는 동력이 된다고 믿는다. 스님이 추구하는 불교적 가치는 선관쌍수(禪觀雙修). 선과 관의 수행법이다. 걷거나 눕거나간에 관세음보살을 떠올리며 너는 뭐냐의 화두를 탐구하는 방식이다. 좌우명이기도 한 견성성불 제도중생의 포교정신이 그 바탕이다. 견성성불은 지혜이고, 제도중생은 자비를 말한다.

     

    스님의 법문은 유명하다. 현대에 맞는 생활법문을 유튜브로 알리고 있다. 유튜브 독자는 수십만명이다. 한시간짜리 법문을 위해 20시간의 시간을 들인다고 했다. 소통과 공감능력을 살리는 법문을 위해 불경은 물론 동서 현철들의 어록들을 두루 섭렵한다.

     

    -오늘날의 종교가 소멸의 과정을 가고 있다는데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사회는 첨단화되어가고 있는데 종교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목사나 신부보다 스님들이 노력해야 합니다. 논리적 합리적 대중적 공감 능력이 가는 법문을 개발해야 합니다. 준비하지 않고 고리타분한 설법은 감동을 주지 못하지요.”

     

    스님은 감포 명상센터에 와불을 크게 세운 의미도 강조한다.

    "와불은 세계 평화, 나라의 평화, 가정의 평화 그리고 나의 평화를 간구하는 상징입니다. 그런데 평화를 깨는 일들이 많습니다. 최근 현정부에서도 북한과 대결주의로 가고, 긴장을 강화하는 정책을 수행하는데 그런 부분은 국가 이익 차원에서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구 경북은 보수적인 곳인데 이런 발언이 괜찮냐고 묻자 불교가 지향하는 가치는 평화라는 답변이 거듭 돌아왔다. 은해사 법타 스님이 북한에 국수공장을 차릴 때 참여했노라고도 했다. 평화와 배려와 헌신이라는 부처님 가르침으로 읽힌다.

     

    -모교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요즘 모교의 평판도가 높습니다. 작년 중앙일보 대학 평가 순위에서 9위를 했더군요. 대학시절 김용정 교수가 1969년 의과대학 설립을 할 수 있었는데 못하고, 몇 년 지체된 것을 말씀하실 때 안타까웠습니다. 을지로 6가의 메디칼센터를 300억원에 애입할 수 있었는데 매입하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로스쿨을 가져오지 못한 것도 애석한 일이고요. 이젠 기회를 놓쳐선 안됩니다. 그리고 세계적 석학을 모셔와야 합니다. 학생들이 입학할 때는 서울대 연고대에 비해 뒤쳐진다고 해도 졸업할 때는 이들을 능가한다는 실력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총동창회에 바라신 점은 어떤 것입니까.

    친목과 교류를 활성화해야 합니다. 부회장 제도를 확장해 재정을 확충하십시오. 학림회 등 모교 출신 스님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활동해주기 바랍니다.“

    스님은 몇해 전 중국 칭따오 대관음사 분원에 잠시 머물고 있을 때 칭따오 주재 동창회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가 2000만원을 기탁한 바 있다.

     

    이계홍(본보 편집위원장. 65국문학과)



    ▲ BUD 와불상 앞에서 우학스님(중앙)과 임선기 사무총장(왼쪽), 이계홍 편집위원장(오른쪽)이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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