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총동창회
 
 
 
2023 자랑스러운 동국인 대상 성영석(경영67) 동문
  • 최고관리자 | 2024.01.08 18:09 | 조회 671
    2023 자랑스러운 동국인 대상 성영석(경영67) 동문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 모신 '34년 삼성맨'

    ROTC 후배 위한 ULTRA 112 장학제도 설립 및 장학금 기탁으로 ROTC 대통령상·국무총리상 견인

    뼛속까지 동국인의 자부심


    첫 인상이 꼼꼼하고 깐깐해 보인다. 그만큼 빈틈이 없는 인상이다. 이는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 삼성에서 34년동안 근무한 관록에서 얻어진 품성으로 보인다. 성영석(67경영학과) 한국포리머(주) 회장의 캐릭터다. 그는 1973년 삼성에 입사한 뒤 34년동안 제일모직,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중공업, 동관 삼성전기 유한공사 대표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성 회장은 모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모교 평의회 의장, ROTC 총동문회 16, 17대 회장, 67학번 홈커밍데이추진위원장을 지낸 경력을 통해서도 모교, 총동창회와 인연이 깊다. ROTC 동문회장으로서 후배들을 이끈 결과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을 한 기에 동시 수상한 ROTC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견인한 주인공이다. 이런 업적이 인정되어 총동창회는 그를 지난 12월 열린 동국인 송년의 밤에서 ‘2023 자랑스러운 동국인 대상’ 수상자로 선정해 시상했다.

    총동창회 회의실에서 만난 그는 모교에 대한 사랑과 지지가 뼛속까지 스며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동시에 안타까움과 아쉬움도 토로했다. 모교가 지난해 전국대학 평가에서 8위에 오른(중앙일보 선정) 성적에도 불구하고, ‘재정확충’과 ‘거버넌스의 구조 변화’를 가져오면 일류 대학으로 더욱 클 수 있다고 자신있게 장담한다.

    성 회장과의 인터뷰는 오후 2시에 시작해 저녁 식사자리까지 무려 4시간동안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고 흥미진진했다. 삼성 근무 34년의 에피소드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2023 자랑스러운 동국인 대상’ 수상 소감을 묻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하겠다고 하자 단박에 그런 상투적인 얘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듯 “동국인의 자긍심을 높이고 더 좋은 전통을 잇는다”는 정신을 말하면서 ROTC 총동회장 재임시와 이임후에도 후임회장들과 긴밀한 협력으로 후배들이 대통령상(1등)과 국무총리상(2등)을 동시에 수상한 이력을 소개했다.



    “학군단장은 대개 전역을 눈앞에 둔 장교가 부임해 옵니다. 그런 면에서 긴장도가 떨어지는 측면이 있지요. 저는 ROTC 동문회장을 맡자 학군단장실을 매일 출근하다시피하면서 후배들을 독려했죠. 그리고 후배 장학금 조성과 함께 정성적·정량적 평가 매뉴얼을 짜 치밀한 교육을 시켰습니다. 학군단장을 달달 볶아서 후배들을 지도하다 보니 누가 학군단장인지 모를 지경이었지요. 처음엔 학군단장이 불쾌해하더니 나의 진정성을 보고 적극 협력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ROTC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을 한 기에 동시에 받는 영광을 누렸지요. 매뉴얼대로 후배들을 직접 관리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이같은 관리는 삼성 근무의 노하우가 그대로 녹아있다. 그는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인사관리와 경영철학을 직접 배웠다고 했다. 과장시절 비서실에 발탁되어 3년여 이병철 회장을 직접 모셨다.

    이병철 창업주 수행 비서를 하게 된 배경과 일화를 소개하신다면?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 배치된 것은 아닙니다. 삼성은 인맥이나 학연을 따지지 않습니다. 일단 채용되면 삼성맨일 뿐입니다. 비서실 직원은 당시 130명 정도였습니다. 삼성의 ‘키맨’들이라고 봐야죠. 저는 회장 비서팀장을 맡았는데 제 소속으로 10수 명이 배치되었습니다. 이들을 통솔하면서 매일 아침 6시30분 집을 나서 이태원동 이 회장님 댁(오늘의 리움박물관 옆 승정원)을 찾습니다. 오전 7시 40분쯤 회장을 모시고 출근하는데 출근 시간이 시계추처럼 일정합니다. 회장님의 생활 방식은 검소하고 단아하십니다. 옷도 비싼 것 입지 않고, 제일모직 옷감으로 옷을 맞춰 입습니다. 저는 회장님댁 안방을 드나들기도 하고, 때로 식사도 같이하지만, 단순히 수행비서로서 역할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삼성이 반도체 산업에 참여한 것은 1977년 12월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면서부터다. 인수한 한국반도체는 요즘 말하는 반도체와는 거리가 멀었다.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1983년 3월 15일을 반도체 원년의 날로 선언하고 같은 해 9월 기흥에 메모리 공장을 기공하면서 삼성반도체는 본격적으로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것이고 오늘날의 삼성반도체의 초석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난관이 많았다. 삼성 내부에서만이 아니라 정부에서도 반대했다. 천문학적 예산이 드는데다 국가경제의 20%를 차지하는 삼성이 반도체 사업을 벌이다 혹시 파산한다면 국가적 피해가 올 것이라고 우려했기 때문. 그래서 삼성내에서도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부딪쳤다. 이때 성 회장은 항상 찬성하는 편에 의견을 보탰다.

    우리나라처럼 자원이 부족한 나라는 기술집약적인 업종을 선택해 먹거리로 삼야야 한다, 우리나라는 교육 수준이 높다, 이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도 모험을 걸 필요가 있다는 점을 건의했다. 이 말을 듣고 이병철 회장이 승용차에서 직접 자기 옆자리로 옮겨 앉으라고 해서 얘기를 나누었다.

    “라인 하나를 까는데 1억달러 이상 드는데(오늘날로 치면 수십억 달러에 달한다), 그러니 국가에서도 엄두를 못내는 것이죠. 하지만 반도체를 해야만이 세계 일류기업으로 발돋움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계셨고, 나도 지근거리에서 여러 정보를 파악해 보고를 올렸습니다.”

    오늘날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시키게 된 것에 성 회장도 한 몫 했다는데 자부심을 느낀다. 항간에선 삼성 직원 채용을 할 때, 유명한 관상가가 회장 곁에 앉아 응시자 관상을 본다는 설이 있는데 사실이냐고 묻자 단박에 “아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면접시험을 볼 때 이병철 회장을 비롯해 조우동 제일모직 회장,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 등이 함께 면접에 나섭니다. 이들이 모두 연로한 분들이라서 돋보기를 쓰고 이윽히 응시자를 보기 때문에 그런 루머가 돈 것으로 보였을 수 있지만, 절대로 관상가가 배석하진 않습니다.”

    성 회장은 비서실 근무 이후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삼성전기, 동관 삼성전기 유한공사 대표 등을 역임했다. 1988년 임원 승진해 빠른 임원 기록도 갖고 있다. 그 비결은 평범하지만 성실, 근면, 정직에서 찾는다. 이는 좌우명이자 가훈이기도 하다.

    삼성에서 성 회장에게 영향을 준 분이 있다면 누구입니까.

    “당연히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죠. 그러나 일을 배운 이는 이명환 부장이란 분입니다. 제일모직 시절, 일과를 마치기 전 품의서와 보고서를 쓰는데 명사형은 반드시 한자를 쓰도록 합니다. 그런데 보고서를 올리면 이유도 없이 펜으로 줄을 주욱 그어 되돌려주면서 다시 써오라고 합니다. 아무리 훑어봐도 틀린 글자가 없는데 틀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옥편을 찾아 일일이 찾아보는데 한군데 틀린 부분이 있습니다. 이렇게 한군데만 틀려도 서류를 ‘빠꾸’시켜버립니다. 그래서 다시 써서 올리면 그때서야 결재를 해줍니다. 완벽주의와 제일주의를 이때 배웠습니다.”

    이런 근무 환경을 30수년 겪어서일까, 그는 빈틈없고 꼼꼼해보인다.



    성 회장은 모교와 총동창회에 기여한 바 크다. 2006년부터 총동창회 상임이사, 부회장, 지도위원등 임원으로 활동하며 총동창회 발전기금 2,500만원, 총동창회비 850만원(2005-2023), 모교 발전기금 5,000만원, 입학 50주년 홈커밍데이 행사를 주관하면서 발전기금을 모교에 기탁하고, 홈커밍데이를 제도화하는데 기여했다. 또 울트라112장학금 제도를 만들어 2009년 직접 3,000만원을 기부해 장학금 마중물로 삼아 매년 20명의 ROTC 재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왔다. 모금 총액은 3억 6,500만원에 이른다.

    이같은 지원만이 아니라 모교 평의회의장(2016-17)으로서 역할을 했다. 그는 평의회의장직을 수행하면서 모교가 발전할 수 있는 무한 저력과 한계점을 동시에 파악했다. 


    모교의 저력과 한계는 무엇입니까.

    “조계종의 종립학교라는 점이 커다란 힘이 되고 있지요. 이만한 규모의 종립학교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실질적으로 상호 상승 보완작용이 없다면 유명무실한 관계가 되고 말지요. 그래서 그것이 장점이 되지만 한계도 되고 있습니다. 모교가 지난해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전국 8위를 한 점, 괄목할만한 발전이라고 보지만 조금만 더 노력하면 5위권 진입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봅니다. 종단과 재단, 모교, 총동창회의 결속과 단합만 있으면요.”

    이를 위해 성 회장은 ▲재정확충과 ▲거버넌스의 구조 변화를 든다. 

    “모교 재정확충은 재학생 등록금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등록금이 학교 재정의 60% 이상이 되기 때문이죠. 교수들의 연구비 수입도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산학연 3위일체가 되는 ‘대학기업’을 만들어야 합니다. 동관 삼성전기 유한공사 대표시절, 베이징대와 칭화대 벤처 창업 활동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이들 대학들은 벤처 창업을 통해 한해 3,000억-4,000억의 수입을 올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역시 학교에 산업을 접목시켜 산학연 지주회사를 만들어 우수학생들이 벤처기업을 창업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대학기업을 통한 벤처 창업을 하면 취업도 보장되고, 성공할 경우 이익금의 10-15%를 모교에 내도록 하는 제도 확립을 통해 재정확충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나간다면 그는 삼성에서 익힌 관리와 운영의 노하우를 봉사 차원에서 무한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창업 투자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젊은 동문 벤처기업인 전화성 동문같은 인재들을 활용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그는 ‘거버넌스의 구조 변화’에 대해서도 강도높게 설파한다. 모교 발전의 한계가 여기서 비롯된다는 아쉬움을 표출하면서 “조계종단과 모교 재단, 학내 구성원과 총동창회가 선순환적으로 협업체제를 이룬다면 일류대학으로의 진입은 쉽게 달성되리라 전망한다.

    "삼성전기중국법인장 시절 회사 앞에서 들치기 사고가 빈발했습니다. 그래서 회사가 있는 광뚱성 서기와 만찬을 한 자리에서 이 사실을 전달했습니다. 그랬더니 당장 다음날 거리 정비를 하고, 가로등을 확충하고 검문소를 설치하는 등 불량배나 들치기꾼이 활보하지 못하도록 조치하더군요. 역시 ‘꽌시(관계)문화’가 유감없이 작동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든 관계는 인연법이라는 인과관계에서 비롯되니 우리 역시 구성원들이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거버넌스의 일대 구조변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모교에 대해 할 말을 더 보탠다면?

    "이공계통 정원을 늘려야 합니다. 세상의 변화와 트렌드를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법인 전입금도 늘려야 하겠지요. 다른 대학의 법인 전입금은 평균 10% 안팎인데 반해 우리 모교는 2-3%에 지나지 않습니다."


    재학생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공부도 때가 있습니다. 일과중 반드시 공부시간을 정해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학생때는 1순위가 공부입니다. 그런 다음 취미활동, 친교활동을 가져야지요."


    총동창회에 건의할 말은?

    "모교의 평판도가 위상을 높이지만 아웃풋(졸업생 업적)의 역할도 동국인 위상을 가르는 척도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총동창회는 한때의 얼룩을 털고 단합과 결속의 길을 가야한다고 강조한다. 한 시절의 갈등 관계를 말하는 것 같다.

    성 회장은 모교 졸업하자마자 71년 3년 사귀던 동갑나기 원연희씨와 결혼했다. 슬하에 2남을 두고 있는데 두 아들 모두 나이 50을 넘었고, 앞가림을 잘하고 있다고 했다. 일찍 결혼한 것도 나이 먹어서 결혼하면 아이들 뒷바라지가 힘겨울 수 있다는 나름의 철저한 계산에서 이루어졌다. 

    이계홍(총동창회보 편집위원장. 65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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