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총동창회
 
 
 
[新명인열전]15년전 낙향해 대하 역사소설 집필… “이순신에 ‘필’ 꽂혔어요”
  • 관리자 | 2016.07.05 09:50 | 조회 591

    [新명인열전]15년전 낙향해 대하 역사소설 집필… “이순신에 ‘필’ 꽂혔어요”


              <52> 소설가 정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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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화순군 이양면에서 보성군 복내면으로 넘어가다 보면 고갯길 오른편에 고풍스러운 기와집이 보인다. 건너편에는 신라시대 고찰인 쌍봉사가 자리하고 있다. 계당산 쪽으로 난 고샅길을 걷다 보면 어른 허리춤 높이의 사립문이 나온다. 대나무로 엮은 사립문에는 집필 중이라는 푯말이 걸려 있어 한눈에 작가의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단아한 생활한복 차림의 작가가 반갑게 맞는다. 오랜 기간 불교적 사유가 담긴 소설과 산문을 발표해 온 정찬주 작가(63). 지난달 29일 만난 그는 대하 역사소설에 필이 꽂혀 있었다. 지난해 1월부터 전남도 홈페이지에 이순신의 7을 연재 중인 작가는 소설 속의 이순신과 자주 빙의(憑依)’를 한다고 했다. ‘영웅 이순신이 아닌 민초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인간 이순신을 그리려면 그의 갑옷 속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순신에 대한 모심(慕心)과 창작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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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이순신과 민초들의 삶 조명

    이순신의 7은 작가가 10년 넘게 준비한 작품이다. 지금 연재되는 글은 사료와 고증, 현장 답사의 결과다. 그의 서재는 마치 작전상황실같았다. 벽에 부산항에서 여수 거문도까지 남해안의 지형과 수로, 수심을 표시한 25만분의 1 지도가 걸려 있었다. 난중일기, 충무공전서, 선조수정실록, 연려실기술 등 사서를 비롯해 이순신 휘하 장수들의 문중 문집과 고장의 인물과 역사를 기록한 사료집 등이 빈틈없이 꽂혀 있었다. 여기서 그는 매주 200자 원고지 6080장 분량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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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임진왜란과 이순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5년 전이다. 서울에서 고향(보성군 복내면)인 남도 땅으로 낙향한 그는 임진왜란 때 분연히 일어섰던 백성들의 충절과 애환을 곳곳에서 느꼈다. 그가 사는 화순에는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하자 호남도 우리나라 땅이요, 영남도 우리나라 땅이다(湖南我國之地 嶺右我國之地也)’라며 진주성으로 달려가 순절한 최경회 의병장(15321593)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라고 임전무퇴의 장계를 쓴 보성의 열선루 누각 흔적도 집에서 멀지않은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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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도 홈페이지에 소설을 연재하게 된 것은 이낙연 전남지사와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3년 전 광역단체장 선거를 준비하던 이 지사는 작가의 집을 찾아 예향이자 의향인 호남의 정체성을 드러낼 만한 활동이 없겠느냐며 조언을 구했다. 작가는 임란 이야기를 꺼냈다. 궤멸 직전의 조선 수군이 기사회생한 데는 바로 이순신 장군과 남도 백성들의 힘이 절대적이었는데 백성들의 역할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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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에 옷을 입히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 지사가 취임 이후 잊지 않고 연락을 해 연재를 하게 됐어요. 요즘엔 대하소설 지면을 얻기가 쉽지 않은데 이 지사가 공간을 내줬으니 고마울 따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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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상상력을 덧칠한 이순신의 7은 연재가 되자마자 화제를 모았다. 치밀한 취재와 철저한 고증으로 당시 군사문화, 의식주, 풍속 등을 묘사한 데다 충청도와 전라도 사투리로 나눈 대화 또한 색다른 역사소설의 맛을 느끼게 했다. 충남 아산이 고향인 이순신의 사투리는 이런 식이다. “장수의 숙명은 적과 싸우다 이기고 죽는 겨. 살아남아 부귀영화 누린다믐 비겁헌 일이여.” 수군들의 전라도 사투리도 정겹다. “요번 작업에는 설 밑구녕까정 바짝 혀서 장전과 편전을 겁나게 맹글어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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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일 현재 79회를 연재했는데 댓글을 보면서 반응이 뜨겁다는 것을 느낍니다. 강원도에 사는 독자는 전화로 전라도 사투리를 읽고 눈물이 날 정도로 힐링이 됐다고 하더군요.” ‘이순신의 7은 최근 3권의 책으로 나왔고 내년 2월까지 7권이 완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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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향 그윽한 이불재

    청산은 바쁘게 사는 흰 구름을 보고 비웃는다(靑山應笑白雲忙).’ 19세기 고승 초의선사가 남긴 시의 한 구절이다. 정 작가는 2001년 흰 구름 같은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낙향한다.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83년 한국문학 신인상, 1996년 제5회 행원문학상을 받는 등 촉망받는 소설가였던 터라 다들 의아해했다. 그는 도시가 주는 숨 막히는 속도와 불안이 싫었다. “여러 지인이 서울 부근의 시골에서 살기를 권유했지만 사이비 낙향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유배 떠나듯 멀리 남도 산중으로 내려와 묵은 밭에 집을 짓고 이불재(耳佛齋)’라는 당호를 걸었습니다.” 이불재는 솔바람으로 귀를 씻어 불()을 이루는 집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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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에게 자연은 새로 만난 스승이었다. 새벽 하늘에 떠 있는 총총한 별과 풀잎 끝에 맺힌 이슬, 앞마당에 만개한 매화, 밭에서 금방 캐낸 고구마 줄기는 초보 농사꾼인 그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무는 낮에 몸무게를 불리고 배추는 밤에 잎사귀를 키우지요. 땅콩이 땅속에 있는 콩이라고 해서 땅콩으로 불리는지를 서울에 살면 어찌 알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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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이불재에서 창작에 전념하며 세속과 소통했다. 유난히 불교 고승들에 관한 소설을 많이 썼다. 통도사 극락암의 경봉 스님에 대한 이야기는 야반삼경에 촛불춤을 추어라’, 성철 스님은 산은 산 물은 물’, 일타 스님은 인연’, 법정 스님은 소설 무소유’, 한용운 스님은 만행이다. 일찍부터 내로라하는 선승(禪僧)을 많이 만난 인연이 소설의 자양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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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중에서 송광사 방장 구산 스님과의 인연은 잊을 수가 없다. 대학 시절 방학 때 동료 학생들과 송광사에서 스님을 뵙고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한번은 스님이 여러 명이 모인 자리에서 그에게 중생이 뭐냐고 물었다. “깨닫지 못한 사람입니다라고 했더니 그건 책에 나온 말이고 네 생각을 말해 봐라라고 했다. 대답을 못하고 쩔쩔매고 있는데 스님이 개구쟁이처럼 포도알을 공중으로 던져서 입으로 받아먹는 것이 아닌가. 긴장감을 한순간에 풀어내는 묘기에 모두가 폭소를 터뜨렸다. “송광사를 나설 때 일주문까지 따라오셔서 자애로운 눈빛으로 너 머리 깎고 출가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때 좋은 소설 한 편 쓰는 것이 꿈인지라 출가를 접었어요. 불가의 구도 소설을 꾸준히 내는 것도 또 다른 출가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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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향(文香) 그윽한 이불재에는 전국에서 방문객이 찾아온다. 독자도 있고, 유명인사도 있고, 우연히 들른 사람도 있다. 정 작가는 오전 집필 시간만 빼고는 누구든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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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바람에 귀를 씻어 진리를 깨친 것일까. 그래서 오는 사람은 막지 않고 가는 사람은 잡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는 것을 작가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동아일보 2016년 7월 4일자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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