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총동창회
 
 
 
㈜동진기업 회장 송석환 동문(64농경제학과) 인터뷰
  • 최고관리자 | 2022.10.23 19:59 | 조회 901
    조상 대대로 실천해온 나눔과 배려의 정신
    기업인과 교육인의 삶...대표적 친환경 합성수지 식품 용기 개발로 꾸준한 회사 성장 



    신뢰와 인내가 경영철학

    거듭된 사양으로 일정이 잡히지 않았는데 총동창회의 주선으로 어렵게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송석환(78. 농업경제학과 64학번) ㈜동진기업 대표이사 회장은 “원로 선배들도 있고, 특별히 말할 것도 없다”며 인터뷰를 한사코 고사했다. 총동창회 수석부회장과 24대 총동창회장직을 수행하며 장학기금 및 운영기금 등을 기부하며 모교와 총동창회에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것 뿐아니라 10월 말 총동창회 장학재단을 통해 또다시 모교에 1억원의 장학기금을 기탁한 공로를 보아서도 인터뷰를 강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힘들게 일정을 잡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동진기업 16층 회장실을 찾자 마침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업을 하는 원로동문 김규영 회장(경제과 58학번)이 방문해 계셨다. 송 회장은 “김규영 선배님과 형제처럼 지내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꼭 김 선배님 집에서 묵는다”고 소개했다. 

    송 회장은 미국에 사는 손주가 엄마와 함께 한국에 나와서 지내다 미국으로 돌아갈 때, 공항까지 바래다 주는데 헤어지는 것이 어찌나 아쉽던지 눈물이 나더라고 했다. 기업 회장들이 보이는 근엄함과 달리 따뜻한 품성으로 받아들여졌다. 잘 생긴 건강체에 유독 귀가 커보인다. 이 점을 지적했더니 “귀가 크기 때문에 듣기를 잘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겸양이 몸에 밴 듯하다. 인터뷰에는 박대신 총동창회장과 김찬욱 사무국장이 배석했는데, 한동안 덕담이 오간 끝에 회사 발전의 동력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았다.

    “지금 불황이라고 하지만 우리 회사만큼은 매년 10%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힘은 내 좌우명인 ‘신뢰’와 ‘인내’에 있다고 봅니다.”

    ㈜동진기업은 경기 안성과 충북 진천, 광주광역시에 플라스틱 제조공장을 갖고 있다. 한국, 미국, 캐나다, 중국 등 4개국 5개의 글로벌 계열사에서 최고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지난 5월 진천공장 화재 사고로 큰 재정적 손실을 보았지만, 차질없이 복구공사를 진행해 공장 가동률이 상당부분 회복됐다. 내년 5월이면 정상 가동되리라고 전망하고 있다. 

    “화재가 났을 때 나는 미국 출장중에 있었지요. 돌아와보니 공장이 완전 소실되었습니다. 재정적 손실이야 어쩔 수 없지만 회사 임직원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화재사고 이전보다 더 진화된 공장을 짓자고 나서서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습니다. ‘가족같은 회사’라는 결집된 힘이 위기를 극복한 동력이 되었다고 봅니다.”

    동진기업은 동종 업계에서 사원 복지와 급여조건이 가장 좋은 회사로 정평이 나있다. ‘가족같은 회사’ 사풍이 알게모르게 스며있는데, 회사 창업 이후 47년동안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힘이기도 하다. 이런 이미지는 거래선으로도 그대로 이행된다. 송 회장의 회사 경영철학대로 ‘신뢰’의 정신을 이어가다 보니 지금까지 거래선이 끊기거나 떠나간 사람이 없다. 화재로 회사의 손실이 컸지만, 피해를 본 거래선에 보상을 100% 해주었다. 신뢰의 반증이다.

    ㈜동진기업은 남다른 회사 운영 모델이 많다. 직원이 입사하면 ‘보수적인 정년 모델’, 즉 ‘종신고용제‘를 실천한다. 그리고 정년을 한 직원은 3-4년 더 고문직 등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도록 한다. 어려운 회사 시절을 함께 ‘인내’해온 공로를 보답하는 것이다. 

    그리고 1975년 창업한 뒤 어려운 시기를 보냈어도 지금까지 단 한번도 직원 월급 날짜를 미뤄본 적이 없다. 이런 신뢰의 정신이 임직원들이 엄청난 불황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10%의 성장률을 보여주는 성과를 내고 있다.





    만석군 家代의 후손

    회사원을 가족처럼, 거래선을 형제처럼 받드는 정신은 가풍의 영향이다. 그는 ‘양반의 고장’ 경북 상주의 만석군의 후손이다. 일제강점기 아버지 대의 집안 형제 8명이 모두 대학생일 정도로 깨어있는 집안이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집안이었다. 

    아버지 송주식 선생은 일본 중앙대 출신으로 해방 후 농림부에 근무했다. 죽산 조봉암이 농림장관으로 근무할 때다. 아버지는 일제 시기와 해방공간에서 당시 많은 지식인이 걸었던 사회주의자로 활동했다. 그는 사회주의 신념 때문에 해방 직후 그 많은 농토를 소작 농민들에게 무상 분배했다. 좌우 이념 대립이 격화하던 때 탄압을 받다가 6.25가 터지자 월북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아버지의 생사를 모르고 있다. 백방으로 알아보았으나 행방을 찾지 못했다.

    “알만한 분들이 모르는 것을 보니 전쟁 와중에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 헤어진 것은 7세 때지요. 그후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어요. 할아버지는 평생 나에게 ‘정치하지 마라’. ‘원수지지 마라’. ‘나쁜 것 보지 말며, 나쁜 말 전하지도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장래를 기대했던 아버지에 대한 회한 때문이셨을 겁니다.”

    할아버지 송돈호 선생은 고향 인근의 옥동서원에서 후생을 지도하는 한학자였다. 송 회장 가족은 6.25전쟁 중 할아버지와 함께 피난을 다녔는데, 소작인들이 가족들을 몰래 숨겨주고, 쌀과 반찬을 가져다줘 연명했다. 아버지의 재산 분배가 전쟁의 위험 속에서도 이런 따뜻한 손길로 ‘보상’받은 것이다. 부호였던 증조부도 춘궁기에 쌀을 나눠주어 궁핍한 마을 주민들을 구휼(救恤)했다. 그래서 경주에 최부자가 있다면, 상주에 송부자가 있다고 널리 전해졌다. 상주 송 회장 고택은 지금 경북도 지정문화재로 등록돼있다. 

    뼈대있는 집안이라는 자부심 때문에 나쁜 것 보고, 억울한 일 당해도 잊었다고 했다. 돈을 떼먹은 사람에 대해서 원망하지 않았고, 반대로 그 자신 떼먹어도 무방한 돈일지라도 반드시 갚았다고 했다. 그것이 지체있는 가대의 책무이자 덕성이라고 했다. 예전부터 지녀온 존경받을만한 가문의 후예로서의 처신이 알게모르게 가슴 속에 내재되었음을 말해준다.   

    송 회장이 모교 농경제학과를 지망한 것은 할아버지의 “정치하지 말라”는 교육과, 피폐한 농촌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농협조합장을 하자는 소박한 꿈에서 비롯됐다. 또 연좌제에 묶여 현실적으로 큰 꿈을 이루기도 여려웠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뒤 1968년 ‘피아트 자동차’를 생산하는 아시아자동차(현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 입사하면서 진로가 바뀌었다. 

    자재과에 근무하면서 회사 납품하는 제품을 살피다가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어 팔면 엄청난 수익이 창출된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실용적인 플라스틱 용기 혁명이 일어나던 시기라 제품만 만들면 대박을 터뜨릴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1975년 회사 퇴사하면서 서울 도선동에 동진플라스틱을 차렸다. 남녀 직공 6명이 일하고, 그 역시 노동자·외무사원·사장 등 1인 3역을 했다. 이때 “야근시간에 직공들과 함께 양푼에 밥과 반찬을 섞어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맛이 최고였다“고 회고했다. 




    회사를 일군 힘

    오늘의 동진기업을 이루기까지는 힘겨운 시절이 적지 않았다. 기업을 확장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자금 조달이 어려웠다.  

    “77년과 80년 초 연이자 72%의 사채를 쓴 적이 있습니다. 살인적인 이율이지요. IMF관리체제 때는 월 이자 24%의 사채를 끌어다 썼습니다. 플라스틱 용기의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원료값 등 자금 조달이 어려워 힘들었지요. 그러나 부도가 날 위기에서도 사채 이자와 원금을 제 날짜에 꼭 갚았어요. 사채업자들은 함부로 돈을 주지 않습니다. 그들 역시 리스크를 안고 사업하기 때문에 채무자의 돈 갚을 능력과 인품, 회사의 비전을 보고 돈을 줍니다.”

    살인적인 이자를 꼬박꼬박 내는 ‘신뢰’가 오늘날 ㈜동진기업을 키운 근간이 되었다. 

    동진기업은 첨단 기능의 플라스틱 포장 용기를 제조하는 국내 굴지의 회사다. 산업용은 물론 가정용 플라스틱 식품용기를 제조한다. 주요 거래처는 CJ, 농심, 롯데, 해태제과, 풀무원 등 10대 식품회사다, 그러나 거래선을 독점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더불어 살아가자는 신념 때문이다. 특혜를 받는다는 인상을 받지 않기 위해서도 독점 거래를 지양(止揚)한다. 

    송 회장은 동진기업 홈페이지 인사말에서 “동진의 임직원 모두의 목표는 단순한 소비를 위한 생산이 아닌 환경과 미래를 생각하는 친환경적인 제품을 연구하며, 미래 세대를 위한 환경을 생각하며, 보다 나은 가치 창출의 플라스틱 산업의 리더가 되는 것”이라고 밝힌다. 

    송 회장은 “회사 내 연구소에서 환경친화적인 신소재를 끊임없이 개발해 식품용기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면서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리사이클링할 수 있는 기술을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재활용만 잘된다면 플라스틱이 환경 소재로 우수한 제품 생산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누는 정신, 배려의 품격

    송 회장은 지난 10월 말 총동창회 장학재단에 1억원의 장학기금을 기부했다. 이 기금은 모교에 전달된다. 이에 앞서 몇 년 전부터 모교 로터스관 건립기금, 총동창회관 건립기금, 장학기금 등 현재까지 약 5억여 원을 후원했다. 이런 공로로 2020년 총동창회가 수여하는 ‘자랑스러운 동국인’ 대상을 받았고, 지난해엔 모교 발전을 위한 공로로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송 회장은 “모교가 최근 대학 브랜드 평판 순위에서 5위를 차지했다는 데 자부심을 갖는다”면서도 편중된 이사진 구성 등으로 인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모멘텀을 찾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한편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지난 9월 11일부터 10월 11일까지 브랜드 빅데이터 2억 3202만 5267개를 분석한 결과, 1위 서울대, 2위 연세대, 3위 고려대, 4위 중앙대에 이어 모교가 5위를 차지했다.

    송 회장은 고교 모교인 김천고 송설당교육재단 이사장을 10여년간 맡기도 했다. 이때 김천고를 전국 최상위권 학교로 끌어올렸다. 송 회장이 이사장 취임하기 전엔 전국 2300개 고교 중 1300위에 머물렀지만, 이사장 재직 중 29위로 끌어올렸다. 경북 지역에선 1위. 서울대 진학도 매년 20여명에 이른다. 

    그는 이사장 취임과 동시에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하고, 교실, 기숙사 신개축 및 교육시설 현대화 사업, 대대적인 장학사업을 벌였다. 김천고는 김구·여운형·조만식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최송설 여사가 창립한 민족 사학이다. 

    송 회장은 총동창회에 대해 “회장이 내실있게 살림을 꾸려간다”고 평가하면서 “나는 원용선·이연택 회장 시절 수석부회장을 8년 가까이, 그리고 24대 회장직을 수행했다. 총동창회는 이해집단이 아니다. 겸손과 배려, 봉사의 정신에서 벗어나선 안된다. 한때 애먹은 사람들과 함께 허심탄회한 해원(解冤)을 한다면 더욱 동창회가 화합하고 단합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있었던 총동창회 갈등기의 아쉬움의 토로다.

    부인 최영옥 여사와의 사이에 세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 승혁씨와 차남 승민씨가 국내 4개 계열사를 맡고, 미국·캐나다 법인은 장남과 3남 승우씨가 공동으로 맡고 있다. 송 회장은 아들들에게 특별한 교육관 대신 “겸손만이 성공의 길”이라고 가르쳐왔다고 전한다. 



    이계홍(65 국문·총동창회보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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