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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승부사’ ... 최승희 변호사를 만나다
  • 최고관리자 | 2025.08.01 15:14 | 조회 3271
    서초동 ‘승부사’ ... 최승희 변호사를 만나다



    서초동은 대한민국 법조계의 심장부다. 변호사 사무실이 없는 건물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나라 변호사들의 삶터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곳 변호사들의 경쟁은 치열하다. 이곳에서 월등히 높은 승소율을 자랑하는 동문 최승희 변호사(동국대 법학과 02학번)를 만났다. 7080동문회 운영진으로 활약 중인 그는, ‘생계형’이라며 자신을 낮췄지만 승률이 높고 내공이 만만치 않은 변호사다.

    사법시험은 생각지 못하게 덜컥, 동국대는 삼수 끝에

    서울 강동구에서 초‧중‧고를 다니며 성장기를 보낸 최 변호사는 삼수 끝에 동국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사시는 생각지 못하게 덜컥 붙었고, 동국대는 삼수해서 왔어요. 삼수를 하지 않으면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농담도 있듯 어린 시절 최대 고비를 거쳐 들어왔죠.” 사시 붙는 것보다 동국대에 입학하는 게 더 어려웠다며 그가 활짝 웃었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운동과 캠핑을 좋아했다. 중학생 시절, 운동회 때마다 계주 선수로 활약했다. “체육 선생님이 공 던지는 저의 모습을 보고 ‘창 던지기 선수를 해보면 어떻겠냐’며 권유도 했어요” 변호사가 아닌 창던지기 선수 최승희가 될 뻔한 순간이었다. “창 던지기 선수는 왠지 멋져 보이지 않았어요. 아마 골프였으면 했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하하” 그는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공부는 뒷전이었다. “공부엔 관심이 없었고, 반에서 인기가 많았죠.” 부모님도 잔소리 대신 산과 바다로 그를 데리고 다니며 자연 속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최 변호사는 오늘의 자신을 만든 사람으로 주저 없이 부모님을 꼽는다. 어린 시절의 자유롭고 행복한 기억들이 오늘의 그를 만든 것 같다.


    친구 따라 사법고시, 결국 내 길이 되었다

    그는 대학에서도 2학년 때까지 신나게 놀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동기들이 하나둘 공부하러 간다며 사라지더니 놀 친구가 없는 거에요. 마침 제일 친한 친구인 권윤정의 영향으로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했어요.” 이후 신림동에서 본격적으로 수험생활을 시작,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2009년에야 졸업을 했다. 신림동 고시생 생활도 특유의 낙천적 성격 덕분에 큰 스트레스는 없었다.
    “2012년에 시험을 봤는데, 잘 본 것 같지 않았어요. 떨어졌구나 생각하고 올레길을 걸으려 제주도에 내려갔죠. 게스트하우스에서 놀고 있는데 친구한테 합격했다는 연락이 온 거에요. 그때 친구에게 ‘진짜야?’하고 되물을 정도로 그 소식이 꿈만 같았죠.” 그해 동국대에서는 그를 포함해 6명이 합격했다. 대선배셨던 故정상영 KCC 회장은 합격자 모두에게 500만원씩 축하금을 주었다. 합격 소식을 듣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버지가 한참 말을 잇지 못하고 소리 내어 울었다. 아버지는 변호사 딸을 태우고 다녀야 한다며 캠핑용 차를 버리고 제네시스로 차를 바꿨다. 최 변호사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여섯 해 전에 여행을 좋아하는 아버지에게 풀옵션 카니발 차량을 선물했다.


    놀기 좋아했던 그는 어떻게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을까?

    그의 비결은 단순하지만 강력했다. “기본서를 반복하고 기출문제를 풀고 학원 강의에 집중했어요” 특히 <불합격을 피하는 법(최규호, 법률저널)>이라는 책의 회독법을 실천, 수험서를 반복해서 읽고 10년 치 기출문제를 분석했다. “책의 윤곽이 한눈에 들어오고 중요한 뼈대가 잡히더라구요. 그 부분만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시간 낭비를 막기 위해 어려운 문제는 과감히 건너뛰었어요. 시험 전날 수험서 전체를 한 번 쭉 읽는 게 중요하구요.” 신림동 스터디는 한 번도 안 했고, 틈나는 대로 관악산과 삼성산을 오르고 도림천을 걸었다. 운동으로 자기 관리에 힘쓰며 약간의 포기를 할 줄 아는 방법을 터득한 게 합격의 길이었다.


    실전 경험이라는 인생 수업 그리고 두림법률사무소 개소



    그는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자산운용사에서 사내변호사로 활동했다. 그 회사는 부동산 담보 채권 양수, 건물 인수 등 큰돈을 만지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다양한 전문가들과 일하며 실전 감각을 키웠다. 돈이 흐르는 곳에서 일하다 보니 자산과 금융에 대한 안목이 넓어졌다. 1~2억원 정도는 하루에도 몇 번씩 눈도장을 찍어 가볍게 생각됐고, 배짱도 생겼다. 그러나 회사는 투자에 실패하면서 그만 문을 닫고 말았다. 회사가 해체된 후 2017년 지금의 두림법률사무소를 열었다. 동국대 94학번 선배이자 연수원 동기인 신유진 변호사가 법학과 91학번 선배 김영철 변호사를 소개해 줬다. “김 선배는 제게 사무실 한켠을 내주셨고, 개인 변호사로서 자리를 잡는데도 많은 도움을 주었어요.” 그는 김 선배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았다. 


    ‘이기는 전략’에 집중한 승부사 그리고 신뢰

    서초동에서의 하루는 늘 바쁘다. 법률 상담, 재판 출석, 서면 작성 등으로 쉴 틈이 없다. 이렇게 반복되는 일상이 수험생 생활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삶에 의미를 두면서 매일매일 긴장되게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네트워크 로펌의 출현으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이곳에서 광고나 SNS 활동 없이, 오직 ‘이기는 전략’에 집중한다. “패소할 사건은 애초에 맡지 않아요. 의뢰인에게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솔직히 말합니다. 착수금보다 성공보수를 많이 받는 편이에요.” 솔직함과 유연한 사고, 직관적인 아이디어, 사실관계 습득 능력, 그리고 의뢰인에 대한 신의가 그의 무기다.


    동문 네트워크, 사회생활의 물꼬가 되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동문 모임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연수원 수료 뒤 2015년인가 16년쯤 연수원 동기들 따라서 우연히 동국대 동문 모임에 참석하게 됐어요. 그곳에서 내일신문 김종필 선배를 만났죠. 그냥 거기서 낚인 거에요. 하하” 그 만남을 계기로 그는 동문 모임에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 갔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동문 선배들을 만나 발이 넓어지면서 비로소 사회 생활의 물꼬가 트였다. 연배 차가 나는 선배들과 교류하는 게 어려울 법도 한데,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 친구들과 친척 어른들이랑 자연스레 어울린 덕분에 선배들하고도 잘 지내게 된 것 같다고 한다. 그는 선후배들이 끊이지 않고 연결될 수 있도록 중간 길목에서 자신이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며 동문회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합격이 인생을 크게 바꾸진 않아... 그러나 노력은 계속되어야

    법조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그는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자격증이 있으면 존중과 대우를 받으면서 다양한 분야에 관여하며 일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합격을 해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으니 끊임없이 노력해야 해요.” 공부 하나만 생각할 수 있었던 수험생 때가 오히려 좋았던 것 같다는 솔직한 고백도 덧붙였다. “암튼 변호사가 됐다고 인생이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닙니다.”


    사법시험, 희망의 사다리로

    최근 제기되고 있는 사법시험 부활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전했다. “기회가 부족한 이들에게 희망의 사다리가 필요하다”며 “제한적이라도 최소한의 쿼터로 사법시험이 부활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

    그는 내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며, 언젠가 마음 맞는 동료들과 함께 의뢰인도 변호사도 모두 행복한 로펌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미래의 일을 염려하기보다 오늘의 행복과 최선을 중시하는 최승희 변호사의 삶과 꿈을 응원한다.


    지정구(행정86, 동창회보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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