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불화 복원 넘어 문화유산 가치 계승에 심혈 기울여
내년 9월 30일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전시회 예정
불교대학원 총동문회장 연임하며 동문회 활성화에 기여

인사동 골목길을 돌아 계태사 서울 분원 사무실을 찾아갔다. 고려불화의 대가인 월제 혜담 스님을 인터뷰하기 위해서다. 혜담 스님은 계태사의 주지 스님이자 불교대학원 총동문회 회장을 맡고 있다. 스님은 온화한 미소로 기자를 맞아 주었다.
혜담 스님은 어릴적부터 그림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다. 5~6살 때부터 호롱불 아래서 밤을 꼬박 새워가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벽에 그림을 덕지덕지 붙여놓는 것을 보고 스님의 어머니는 자주 꾸중을 하였다고 한다.
20대 때 스님은 수월관음도를 보고 고려불화에 매료되었다. 고려불화는 700년 동안 명맥이 끊겨 있었고, 현존하는 고려불화 200여 점 중 우리나라 땅에 남아 있는 것은 겨우 20여 점에 불과했다. 미국과 유럽에 20여 점, 나머지는 일본 땅에 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혜담 스님은 스승도 도반도 없이 고문서를 찾아보고 고군분투하면서 고려불화를 구현해 내는 데 성공했다.
국내보다 프랑스에 더 많이 알려져
2014년 혜담 스님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국립살롱전에 초청받아 작품을 전시했다. 이후 스님은 2018년까지 총 5회에 걸쳐 초청 전시를 했는데 여기서 고전 부분과 창작 부분 특별상을 수상했고, 심사위원 특별상을 연이어 받았다. 마지막에는 불모로서 명예훈장을 수상하였다.
UC버클리대 루이스 랭커스터 명예교수는 ‘혜담 스님은 고려불화를 복원시킨 것이 아니라 고려인의 부활(REVIVE)이다’라고 극찬했다.
그림 그릴 때 가장 힘들었던 일은?
수십 년을 서너 시간만 자고 화불을 조성하면서 팔이 빠지고 심장이 멎을 듯 했던 일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거짓말같이 나았다. 금방 죽을 것 같다가도 금방 좋아졌다고 말씀하시면서 웃어넘기셨다.
고려불화는 세필로 정교하게 그리기 때문에 그림을 세워놓고 그릴 수가 없다. 비단을 바닥에 펼쳐 놓고 엎드려서 밤새 작업을 하는지라 눈이 앞으로 쏠리고 어깨가 탈골되는 등 건강상의 문제가 많았다. 스님은 불심 덕에 그러한 신체적 어려움들이 병원을 가지 않아도 거짓말처럼 늘 완치되었다. 그러나 가장 힘든 것은 고려화불을 최대한 고귀하고, 아름답고, 섬세하게 살아계신 부처님상으로 화현하는 것이 최고 어려운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고려불화 중 딱 한 작품을 꼽는다면
“5미터 ‘수월관음 팔부성중도’인데 ‘팔부성중도’는 내가 붙인 이름이고 원래는 『삼국유사』 권3 「낙산 3대성, 관음, 정취, 조신」조에 나오는 낙산성굴의 설화에 의거해 제작한거야”
관세음보살은 고통받는 중생들의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제해 주는 자비의 보살이시다. 의상대사는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자리에 낙산사와 홍련암을 창건했다. 혜담 스님이 그린 ‘수월관음 팔부성중도’에는 의상대사가 좌측 아래에 있다. 이 작품은 우리 땅에 일어난 일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가장 한국적인 수월관음보살상이다. 그래서 스님은 최고로 꼽는다고 했다.
일출 속에서 관세음보살 친견
의상대사도 그러했지만, 혜담 스님도 관세음보살님을 직접 친견했다. 40년쯤 전의 일이다. 수행 정진하던 중 동트기 전 새벽녘 일출 속에 나투신 관세음보살님을 눈을 뜨고 친견했다고 회상하시며,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신기한 경험을 자주 하면서 가끔은 내 안에 누군가 있어서 내 그림을 그려 주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있어” 이렇듯 스님은 불심의 힘으로 어려운 고려불화를 부활시켜 낸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오백나한도’ 작품 속에 나한이 딱 오백 명인지 물었다.
“오백 명이 맞아. 그걸 어떻게 세냐면 조성된 나한 위에 쌀알을 하나씩 올려놓고 그 쌀알을 다 모아서 세는 거지”
하긴 쌀알을 이용하지 않으면 그 작은 나한이 500명인지 헤아리긴 어려울 것이다.
고려불화를 그릴 때 사용하는 안료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특히 금가루를 사용한다는데 그렇다면 비용이 많이 들지 않을까?
“금가루 2그램은 거의 시가 한 돈값과 비슷해”
스님은 금가루가 담긴 봉투를 꺼냈다. 접혀 있던 종이를 펼치자 황금빛 가루가 보였다. 혹시라도 재채기를 해 금가루가 날리면 어쩌나 걱정되어 급히 고개를 돌렸다. 고려불화가 700년이라는 긴 세월을 넘어오면서 그 아름다운 자태를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금의 특성 덕분이었다. 이렇게 안료도 비싸고 정교하게 작업해야 하는 고려불화는 원래 고려 왕족이나 귀족들이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국태민안을 위한 호국, 기복 불화였다.
불교대학원 총동문회장 연임
스님께 고마운 분들이 누구인지 물었다.
“우리 부모님 그리고 부처님, 고려불화, 동국대학교, 부산의 큰 시주자, 고려불화를 봉안한 인연자들이며, 총동창회 문선배 회장님, 전임 박대신 회장님, 전전임 전영화 회장님, 이분들이 너무 고마운 분들이지”
혜담 스님은 항상 혼자의 힘으로 지금의 성취를 이룬 것이 아니라 불심과 주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공을 돌렸다.
혜담 스님의 업적 중에 빠질 수 없는 것은 2022년도부터 불교대학원 총동문회 21대 회장을 맡아 동문회를 활성화 시킨 것이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동문회 조직이 어려워졌는데 스님이 동문회를 위해 나서 주었다. 2024년 22대 불교대학원 총동문회 회장으로 재추대되어 현재 연임 중이다. 스님은 사비를 들여 경제적으로 어려운 동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베풀었으며, 학술대회를 주관하여 회원들의 연구 활동을 장려하고 학문적 교류의 장을 마련하였다. 또한 재학생들을 위해 사비로 장학금을 수여하는 등 후학들이 학업을 이어가는 데 작은 힘이나 보태고자 물심양면으로 헌신하였다. 이 시기 스님은 사회적 실천에도 적극적이었다. 국내외 난민과 재난 피해자, 불우이웃을 비롯해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자비의 손길을 내밀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 9월 30일부터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스님의 고려불화를 집대성한 화집 출간을 기념하여 특별전이 열릴 예정이다. 중국 CCTV에서 인터뷰 요청도 들어왔다. 그리고 가장 큰 소망은 속초 본원 계태사에 고려불화 기념관을 짓는 것이라고 하였다. 기념관을 세워 후손들이 우리 민족문화 예술의 정수인 혜담 스님의 고려불화를 언제든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전했다.
‘불화(佛畵)’는 부처님을 형상화한 그림이지만, ‘화불(畵佛)’은 그림 속에 부처님이 나투셨다는 뜻으로 성보의 의미를 함축한다. 전자는 ‘그림’에 방점이 있고 후자는 ‘부처’에 의미의 중심이 있다. 스님께서는 고려불화 보다는 고려화불이라 칭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강정민(산공89, 동창회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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