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동문합창단, 노래로 세대를 잇다
"합창은 두 번째 인생이자 '힐링'입니다"
11월 1일 강남구민회관 제4회 정기연주회

퇴근 후의 연습실에서 시작된 노래가 세월을 넘어 하나의 화음이 됐다. 졸업 후 각자의 길을 걸었던 동국대학교 동문들이 다시 ‘동국’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노래하는 공동체, '동국동문합창단'. 그들에게 합창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고 삶을 다시 연결하는 또 하나의 인생이다.
지난 4일 밤, 서울 중구 동국대 앞의 한 카페에는 공연의 열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사흘 전 제4회 정기연주회 '추억을 부르다'(Nostalgia)를 마친 동국대학교 동문합창단 단원들이 오랜 시간의 준비와 감동을 나누기 위해 모였다. 이들은 창단 후 8년째, 매주 화요일마다 퇴근 후 연습실로 향한다. 박성기 단장(82학번·국문과)은 "합창은 우리에게 노래이자 삶의 힐링"이라며 "선후배라는 말보다 '가족'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며 미소 지었다.

◇ 세월을 잇는 하나의 목소리, '동국'이라는 이름으로
동국동문합창단은 2017년 12월 19일 첫 창단연주회를 열며 공식 출범했다. 처음에는 10여 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등록 단원 75명, 누적 참여 인원 130여 명에 이른다. 1978학번부터 2010년대 졸업생까지, 이들은 4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한 무대에서 호흡을 맞춰왔다. 박 단장은 "합창단 안에서는 사회적 지위나 직업, 나이 같은 게 아무 의미가 없다"며 "그저 '동국인'이라는 이름으로 모인다. 20년 넘게 차이 나는 선후배도 ‘형님’, ‘아우야’라 부르며 웃는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절에도 이들의 연습은 멈추지 않았다. 박 단장은 "2회 공연을 준비하던 중에 코로나가 터졌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며 "단원들은 마스크 위에 플라스틱 보호막을 덧쓰고 충무로 연습실로 모였다. 그때는 서로의 목소리가 백신이자 위로였다"고 회상했다.
이 합창단이 8년 동안 꾸준히 이어질 수 있었던 힘은 '동문애'다. 학교와 총동창회의 후원, 단원들의 자발적인 참여, 그리고 서로를 향한 신뢰가 이 공동체를 지탱해왔다. 박 단장은 "합창이 노래를 통해 마음을 섞는 일이라면, 그 마음을 잇는 건 결국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 "합창,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
지휘를 맡은 김동원(한예종·바리톤)은 동국대 출신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동국인'다운 사람이다. 김 지휘자는 "합창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면서 "각자의 소리가 다르지만, 서로를 배려하며 한 화음을 만들어갈 때 진짜 음악이 태어난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시기 합창단의 헌신을 잊지 못한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김 지휘자는 "성악가들이 설 무대조차 사라졌던 그때, 이 단원들은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며 "어려운 시기에도 서로를 챙기고, 지휘자인 제 사정까지 배려해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족보다 더 끈끈한 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김재형(86학번·농업경제학과) 총악장은 "합창의 본질은 '조율'이라 생각한다. 음정만이 아니라 마음의 높낮이도 맞추는 일"이라면서 "누군가 지치면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채워주고, 그렇게 다시 한 소리를 만드는 게 합창의 매력"이라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들에게 합창단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삶의 균형을 되찾고, 관계를 회복하며, 다시 세상과 연결되는 '두 번째 인생의 무대'다. 하경혜(85학번·화학과) 총무팀장은 "나이 들며 겪는 우울감이나 갱년기를 합창이 이겨내게 해준다"며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비타민을 먹은 듯 기분이 좋아진다"고 밝혔다. 또한 한소영(86학번·연극영화과) 엘토파트장은 "합창은 마음의 치료제"라면서 "힘든 날에도 화음을 맞추다 보면 마음이 밝아진다. 개인의 노래보다 함께하는 목소리에서 위로를 받는다"고 말했다.
◇ '하나의 이름'으로 다시 모이다
이번 제4회 정기연주회의 주제는 '추억을 부르다'(Nostalgia)였다. 이 제목에는 '노래를 부른다'와 '기억을 되살린다'는 두 가지 뜻이 함께 담겼다. 음악으로 세대의 추억을 엮고, 동문 간의 유대를 새롭게 다지겠다는 뜻이다. 무대에서는 이탈리아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의 ‘대장간의 합창’, 넬라 판타지아 등 외국곡은 물론, 1970~80년대 감성을 담은 국내 합창곡이 어우러지며 관객의 향수를 자극했다.
김 지휘자는 "동국대에는 음대가 없지만, 그보다 더 음악적인 합창단이 될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준비했다"며 "120주년을 맞은 동국대의 이름으로, 아마추어를 넘어 준프로 수준의 무대를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연을 관람한 한 동문은 "무대가 끝날 때까지 손을 놓을 수 없었다"며 "노래를 넘어 우리 세대의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의 또 다른 주제는 '하나의 이름'이었다. 서로 다른 시대, 다른 전공, 다른 인생을 살아온 이들이 '동국인'이라는 이름 아래 다시 모였다. 박 단장은 "졸업 후 각자의 길을 걸었지만, 합창을 통해 다시 동국의 이름으로 만나게 됐다"며 "이제는 동국동문합창단이 학교를 대표하는 자랑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천석(82학번·경제학과) 부단장은 "한때 동국대 졸업을 잊고 살았는데, 합창단에 들어오면서 ‘동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되찾았다"며 "매주 40명이 넘는 단원이 빠짐없이 연습에 나온다. 평균 연령이 55세지만, 열정은 20대 못지않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래는 우리 세대의 공통언어이고, 합창을 통해 우리는 다시 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정재호(15학번·북한학과 대학원) 기획팀장은 “합창은 1부가 연습이라면 2부는 ‘삶의 연장선’"이라면서 "노래 뒤에는 늘 웃음과 대화가 있고, 그 안에서 세대가 섞이고 마음이 이어진다"고 밝혔다.
◇ "노래로 세상을 따뜻하게...그것이 우리의 꿈"
이들은 이제 목소리로 세상과 나누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동국동문합창단은 장학사업과 사회공헌 공연을 확대할 계획이다. 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합동공연을 비롯해, 동문 사회 행사와 지역문화 무대에도 꾸준히 참여할 예정이다.
박 단장은 "아직은 작은 걸음이지만, 합창이 사회와 동문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김 지휘자는 "언젠가 동국동문합창단이 오디션을 통과해야 들어올 만큼 경쟁력 있는 단체가 되길 꿈꾼다"며 "무엇보다 노래를 통해 서로를 위로하고,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합창단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진 화음은 잠시였지만, 그 여운은 길게 남았다. 박 단장은 "공연이 끝나면 늘 허전하지만, 또 그리워진다"며 "우리의 노래가 누군가의 추억 속에 남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합창단의 노래는 이제 무대 밖으로도 번지고 있다. 퇴근 후의 연습실, 늦은 시간의 웃음, 서로를 향한 인사 속에서 그들은 오늘도 화음을 쌓는다. 누군가는 그것을 '추억의 노래'라 부르고, 누군가는 '두 번째 인생의 시작'이라 부른다. 동국동문합창단이 만들어가는 그 따뜻한 화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박준영(정치외교08, 동창회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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