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총동창회
 
 
 

우리는 다시 만나고 있다 - 친구들

관리자 | 2017.11.10 17:31 | 조회 271

                                              신경림(54영문, 시인)


삐걱이는 강의실 뒷자리에서

이슬 깔린 차가운 돌층계 위에서

처음 우리는 서로 만났다


경상도 전라도

그리고 충청도에서 온 친구들


비와 바람과 먼지 속에서

처음 우리는 손을 잡았다

아우성과 욕설과 주먹질속에서


충무로 사가 그 목조 이층 하숙방

을지로 후미진 골목의 대포집

폐허의 명동

어두운 지하실 다방


강의실에 쩌렁대던

노고수의 서양사 강의

토요일 오후 도서관의 그 정적

책장을 넘기면

은은한 전차 소리


그해 겨울 나는 문경을 지났다

약방에 들러 전화를 건다

달려나온 친구

분필가루 허연 커다란 손


P는 강원도 어느 산읍에서

생선가게를 한다더라

K는 충청도 산골에서 정미소를 하고


이제 우리는 모두 헤어져

공장에 광산에 또는 먼 나라에서

한밤중에 일어나 손을 펴 본다


우리의 피속을 흐르는 것을 본다.

솟구쳐 오는 아우성 소리

어둠속에 엉겨드는 그것들을 본다

·

송진 냄새 짙은 강의실 뒷자리에서

꽃잎이 지는 잔디 위에서

우리는 다시 만나고 있다.


이 한밤중에

제주도 강원도 경기도에서

비와 바람과 먼지 속에서

향수와 아쉬움과 보람속에서


(동대신문, 1974. 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