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총동창회
 
 
 
동국의 영원한 노래 - 교가를 말하다
  • 최고관리자 | 2021.10.07 11:52 | 조회 2760


    삼보의 언덕에 울려퍼진 동국의 혼

    큰 광명 큰 지혜 큰 힘으로 누리의 어두움 밝히노니

     

    거룩한 삼보의 언덕위에

    한 줄기 눈부신 동국의 빛

    큰 광명 큰 지혜 큰 힘으로

    누리의 어두움 밝히노니

    우러보라 진리의 동산

    학문의 성화 높이 들렸다.

    가슴마다 높푸른 이상

    오직 의기에 찬 젊은 모습

    이 땅에 새 역사를 창조하리라

    겨레를 위해 인류를 위해

    이 땅에 새 역사를 창조하리라

     

    몸은 떠나도 교가는 혈맥 속에 관류한다동국의 건학정신과 긍지와 자부심이 묻어나는 상징인 교가개교기념식은 물론 입학식졸업식체육대회동창회 모임 때마다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동국의 노래는 동국인 모두의 혈맥 속에 파동친다동국의 혼이 관류한다.

     

    우리 대학의 교가는 첫 개교 때부터 세 번의 교체가 있었다명진학교-중앙불교전문학교-혜화전문학교-동국대학교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그 시대에 맞는 교가가 제정되었다.

     

    명진학교 시절의 교가는 없었고중앙불전 시절 최초의 교가가 제정되었다. 3.1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육당 최남선 선생이 작사한 大界가 다 한가지 동방을 볼 때하고 한 빛이 서려 거기 넘치네 우리 불교전문학교 구원의 힘 구원의 빛으로 끝나는 노래다최남선 선생은 당시 모교에서 조선종교사와 조선어학 강의를 맡고 있었다.

     

    두 번째 교가는 혜화전문학교에서 동국대학으로 교명이 바뀐 1946년 이후에 한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정인보 선생이 작사하고 김성태 선생이 작곡했다이 교가는 젊은 피 뛰는 소리 하늘 울린다 백두산 동해물을 예서 빛내어 이 나라 이 겨레의 복터 되거라라고 학생들의 웅혼한 기상을 고무했다.

     

    세 번째 교가는 오늘날 불려지고 있는 거룩한 삼보의 언덕위에 한 줄기 눈부신 동국의 빛으로 시작되는 노래다불교정신과 젊은이의 기개와 자부심이 용솟음치는 힘찬 노래다. 1964년 시조시인 이은상 선생이 작사하고 김동진 선생이 작곡했다.

     

    이 교가는 당시 동대신문 기자였던 이구용(62영문과미국 거주동문이 김법린 총장의 지시를 받고 이은상 선생과 김동진 교수 댁을 오가며 원고를 받아온 일화가 남아 있다.

    세 번의 교가 변화의 과정을 겪었어도 교가에 담겨있는 뜻은 동국인의 기상과 웅비실천하는 지성의 정신이 그대로 담겨있다.



     교가 해설

     

    진리의 동산에 학문의 성화 높이 들렸다

     

    삼보(三寶)의 언덕이란 곧 불교정신을 모태로 태어난 동국대가 자리잡은 터전을 말한다. 삼보, 즉 불법승은 동국대의 창학정신을 나타낼 뿐아니라 우주와 인간을 구성하고 운행하는 섭리를 의미한다. 따라서 삼보의 언덕은 진리를 구현하고 실천봉행하는 힘의 집결지이자 지혜의 산실이다.

    삼보의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인간사회는 무명에 잠겨 있다.이 어둠과 혼돈의 세계에 요구되는 것은 미혹을 밝혀줄 한 줄기 빛이며, 이는 곧 동국의 빛이자 학문의 성화이다. 성화를 들고 누리의 어둠을 밝혀나가는 동국인들의 가슴은 높푸른 이상과 의기로 가득 차 있다. 굽힘없는 기백과 전통은 겨레와 인류를 위해 이 땅에 새 역사를 창조하자는 다짐으로 이어지고 있다.

    작사자 이은상은 어둠을 밝혀 새로운 세계를 여는 정신이 고려시대 진각국사의 글귀속에 있는 널리 아득한 길에서헤매는 창생들을 건져 멀리 저쪽 언덕까지 실어다 놓아야 한다(광제미도군여원작파라밀다)”에서 비롯되었으믕밝히고, 이를 광원(廣遠)’이라 표현하였다. 이 광원의 정신이 곧 동국인들의 거룩한 선서이자 다짐인 것이다.

    이때 제정된 교가는 현재까지 모교 동국대학교의 교가로 불리고 있다.(동국100년사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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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사 노산(鷺山)이은상(李殷相)의 변

     

    삼보의 터전에 새 역사를

    겨레와 인류위해 원대한 이상 실현

     

    시가(詩歌)에 무슨 해설이 필요한가. 시가는 그저 그대로 읖을 것이요 노래할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저절로 가슴속에 느껴지는 것이 있고 새겨지는 것이 있는 것으로서 족하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구태여 교가에 대한 해설을 가하고자 아니한다. 다만 교가를 지은 이로서 감히 붓을 들게된 경위와 아울러 교가의 가사 내용에 대한 나의 착안점이 무엇이었던가를 몇마디 피력하고자 할 따름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대학중에서도 동국대학이란 이름을 가장 사랑한다. 어딘지 그 이름속에는 이 나라의 이상과 전통이 꾸준히 든든히 박혀 있는 것만 같아서다.

     

    동국(東國)’이란 동방민족의 자손인 우리들의 참된 모습과 긍지를 뚜렷이 바로 나타내보이는, 그리고 자기의식에 가득찬 힘있고 무게있는 이름인 것이 좋다.

     

    그러한 동국대학의 교가를 내가 짓게 되다니! 더구나 역사적으로 보아서 최남선 선생이 첫 번 교가를 지었고, 두 째번 교가는 정인보 선생이 지었다는데, 이번에 새로 지어야할 필요를 느껴서 세 번째로 작사자를 고른다는 것이 구태여 나를 지적한 것은 참으로 받들기 어려운 명령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대학문 안에 내가 일찍 百代一人이라 일컬은 양주동 교수가 계시고, 또 당대의 대시인 서정주 교수를 비롯하여 문단의 명문장들이 수두룩한데 어느 겨를에 그런 영광스런 차례가 문밖에 까지 새어 나올 수 있었던지? 이는 아마 梵山 김법린 총장의 편협한 우정 때문에 빚어진 그릇된 일이리라. 우정이란 원래부터 이같이 편협한 것이 본색인지도 모르지만! 김 총장은 내가 일찍부터 사귀어 진심으로 경외하는 선배 대학자요, 인격자요, 사상가인데다가 특히 왜정때에는 이른바 한글학회 사건으로 옥살이를 같이했던 동지이기도 하다.

     

    사상이란 무서운게지. 같은 사상으로 얽혀진 우정이란 그야말로 쇠라도 끊어낸다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 민족의 얼을 죽잤구나하고 얼싸안고 살아온 그것 한 점에 총장의 뜻과 내 뜻의 합치점이 있고, 또 그것이 바로 동국대학의 정신, 교수 학생 전원의 정신이기도 하기 때문에 어느 결엔지 나마저 동국동지의 한사람이라도 된 듯 자기 재주와 학문의 부족을 헤아려보는 염치조자 잊어버리고 새 교가의 작사에 옹졸한 붓을 던져본 것이다.

     

    나는 첫째, 동국대학이 자리잡고 앉은 그 터전을 三寶의 언덕이라고 이름지어 보았다.

     

    동국대학은 창학의 기본정신이 실로 이 삼보에 있었고, 또 삼보란 반드시 불교로서만 논할 것이 아니라 우주 인간의 대원리를 중시하는 대노선이면서 실천봉행하는 힘의 집결을 뜻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삼보의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인간사회는 실로 어둠과 혼돈속에 잠겨있다. 그러기에 고해(苦海), 화택(火宅)이지.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광범한 의미로서 하는 말만은 아니다. 진실로 고난의 역사 시대를 헤치고 가는 한국사회를 들여다보는 좀 더 뼈아픈 심정에서 하는 심각한 말이다.

     

    그러기에 그 혼돈한 사회를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 한줄기의 눈부신 빛을 방사하여 어둠의 무쇄장벽’(철원 무명세계)을 깨뜨려야겠다. 그 빛이 바로 동국의 빛이다. 삼보의 본원이다. 빛 중에서도 큰 광명이지. 지혜 중에서도 큰 지혜, 힘 가운데서도 큰 힘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동국대학의 창학정신임을 알아야 한다.

     

    그 다음 순간 붓을 든 나의 생각은 한걸음 앞으로 달려갔다 이 삼보의 언덕이라는 이름지은 진리의 동산에는 동국의 빛이란 학문의 성화가 높이 들린 것이 눈에 보였다.

     

    계계승승 오래 오래 가야할 횃불 이기에 성화라는 어휘가 머리에 떠올랐던 것이다. 올림픽의 성화 모양으로. 그러나 나는 그 성화를 들고 선 주인공들의 얼굴이 더 빛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가슴속에는 높고 푸른 이상이 번쩍이고 있었다. 그리고 정의를 사랑하는 그 굽힘없는 기운이 그들의 젊음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동국대학교 학생제군의 모습이어야 한다. 기백이어야 한다. 전통이어야 한다. 자질구레한 글자 나부레기나 줏으러 다니는 것으로써 금옥보다도 더 귀한 젊은 시대를 보낼 수 없다. 교육은 결코 지식이나 전수한다는 값싼 거래는 아니다

     

    인간의 큰길을 바로 찾아갈 수 있는 힘과 의기의 발견에 그 진정한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도 미덥고 씩씩한 젊은 모습들이기에 나는 마지막으로 동국대학교의 학생 제군에게 다같이 두손을 높이 들고 우렁찬 선서라도 시키고 싶었다.

     

    이 땅에 새 역사를 창조하리라 겨레를 위해 인류를 위해라고. 나는 그대들을 위해서 그대들의 해야 할 일을 제시해 보았다.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거대한 인간상이 그리워서다. 큰 힘의 움직임이 이리도 아쉽구나.

    그리고 또 그대들에게 목표를 명시해보았다.

    그래 지저분하게 제 한 몸둥이의 행복이나 누려보자고 하는 짓만은 아니다.

    비록 오늘 이 나라의 가난한 현실이 제 먹을 것조차도 챙기기 어렵다 할망정 그렇다고 그것이 대학교육의 고작 큰 목표일수는 없지 않나.

     

    좀 더 멀리 보라, 좀 더 크게 보라, 겨레를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고구려때 진각국사의 글귀 속에 광원(廣遠) 두 자가 있느니.

    널리 아득한 길에서 해매는 창생들을 건져 멀리 저쪽 언덕에 까지 실어다 놓아야한다.

    그것이 · 두 자의 뜻이다.

     

    좀 더 멀리 보라. 좀 더 크게 보라. 이 마지막 두 줄이야말로 동국대학교 학생들의 선서인 동시에 작사자의 축복 이기도 한 것이다.

     

    19642(동대신문 249호에서 옮김)

     

    이은상(19031982)

    가곡으로 작곡되어 널리 불리고 있는 가고파’ ‘성불사의 밤’ ‘옛동산에 올라등의 시조를 쓴 시조시인. 예술원 공로상 , 5 ·16민족상 학예부문 본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교수를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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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곡자 김동진(金東振)

     

    의기에 찬 젊음의 행진

    장엄한 校運 빛내기를

    이은상 선생이 작사하신 이 교가를 나는 몇 번이나 읽고 어떻게 곡상을 구상할까 생각했다. 교가는 그 학교의 모든 것을 상징하는 노래다. 물론 가사 자체가 벌써 표현하고 있지만 곡을 잘못 붙이면 가사는 죽어버린다. 나는 가사에 충실하여 이 학교의 종교적 전통을 살리며 앞으로의 새로운 역사 창조의 힘찬 행진을 노래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이 곡은 전체적으로 엄숙한 가운데 장엄하고 씩씩한 기상이 내포되었다. 음악적으로 보면 세부분으로 되었다. 처음부터 8소절까지는 높이 세운 등대와 같이, 불타는 횃불같이, 높이 세워있는 학교의 위풍과 이상이 장엄한 리듬으로 표현되었다.

     

    다음 16소절까지는 감격과 엄숙한 종교적인 곡상으로 변화를 가져왔고, 다음 26소절까지는 겨레를 위해 인류를 위해 새 역사를 창조하여 나가는 젊은 세대의 장엄한 행진을 표현한 것이다.

     

    음악이라는 것은 말과 글로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직접 노래를 부름으로써 더 음악의 가치를 알수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 영원히 校運이 빛나기를 바라며 작사와 작곡가의 의도를 살려 좋은 교가가 되도록 많이 불러주기를 바라며 훌륭한 교가가 되어 학교를 빛내줄 수 있다면 여기서 더 큰 영광이 없을 것이다. (동대신문 249호에서 옮김)

     

    김동진(金東振)(19132009)

    국민 누구나가 평소 즐겨 부르는 가곡 봄이 오면가고파를 작곡한 한국의 대표 작곡가다. 예술원 회원서라벌예술대학 및 경희대학교 교수로 재직했으며 3.1문화상,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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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가 변천사

     

    교가(校歌), 개교이래 3차례 바뀌어

    최남선 정인보 이은상 등 당대 석학들이 작사

     

    최초의 교가는 중앙불전 당시 조선 종교사와 조선어학 강의를 맡고 있던 六堂 崔南善 선생의 작사로 1930년 가을에 제정되었다.

     

    惠化의 짙은 숲과 쌍계 맑은 샘

    우리의 聖胎담아 높은 집 있다

    大界가 다 한가지 東方을 볼 때

    하고 한 빛이 서려 거기 넘치네

    우리 불교전문학교

    久遠의 힘구원의 빛

     

    두 번째 교가는 해방후 혜화전문학교에서 1946년 동국대학으로 승격하면서 제정된 것으로 보인다한학자이자 역사학자인 爲堂 鄭寅普 선생이 짓고김성태 선생이 작곡했다.

     

    -느냐 오늘날을 봐라 삼천리

    젊은 피 뛰는 소리 하늘 울린다

    백두산 동해물을 예서 빛내여

    이 나라 이 겨레의 복터 되거라

    뚫어라 쇠-돌도 나가자 물에 불에

    태극기 중천에 솟으니

    우리 동국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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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가의 추억 - 이구용 동문

     

    새 교가 작사 · 작곡 원고 직접 받아왔다

    해외에서 부르니 더욱 정겹고 긍지 고양돼

     

    현재의 교가를 작사한 노산 이은상 선생님과의 인연은 1963년 동대신문 학생기자 시절 김법린 총장님의 지시로 교가 원고를 받으러 안암동 로타리에 있던 선생님의 자택을 방문했을 때가 처음이었다. 좀 쌀쌀한 초겨울 날씨였는데 낯선 이의 방문을 예상하셨던듯 안방에서 한복차림으로 나오신 선생님은 기자(이구용, 영문62)를 양지바른 마루에 앉으라고 하시고는 손수 200자 원고지에 적으신 가사의 내용을 조목조목 설명해 주셨다. 나중에 누상동 인왕산 자락에 사시던 작곡가 김동진 선생님댁도 찾아가서 악보를 받아왔다.

     

    그날 노산 선생님댁을 나오면서 퍽 자상하시단 생각을 했었다. 그때 인연이 되어서인지 그 후에 다시 선생님을 가까이 모시게 되었던 건 1971년 저의 渡美로 인해 오랜 기간은 아니었지만 이은상 선생님이 한국산악회 회장을 하실 때 전국등산대회와 전국명산순례 행사의 임원으로 진행을 도울 때였다. 한국산악회와 연계된 작은 모임으로 대학산악부OB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했던 KCC(Korean Climbers Club)의 총무를 맡았던 연고로 산악회의 행사에 직간접으로 관여하지 않을수 없게 되었다.

    먼 외국에서 부르는 교가는 더욱 정겹고 향수를 불러온다. 1970년대 초반에 뉴욕의 동문들이 모여서 고원 박사(부루클린대학 교수)를 주축으로 뉴욕동문회가 구성되었다. 유영수, 이종대, 배시영 선배님들과 그때 뉴욕에서 최초의 불교사원인 원각사를 여신 모교 부총장 오법안 스님 등의 후원으로 모두들 이민생활에 바쁜중에도 끈끈한 유대를 맺게 되었다. 동문회 행사 때마다 2대 총무를 맡았던 저에게 들어오는 주문은 유일하게 새 교가를 아는 사람이므로 교가를 부르라는 거였다. 자의반 타의반 솔로이스트가 된 경우였다.

     

    그 무렵 숭산 행원스님께서 발원하신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선원 개원식에 동문회에서 단체로 참석하여 파란눈의 행자들이 불경을 줄줄 외우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나중에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저술한 현각스님이 그중의 한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글을 멀리 뉴욕에서 적게 된 계기는 저의 동대신문사 선임이신 송재운(동국대 명예교수) 선배님과 늘 인터넷으로 소식을 나누던 중 며칠전 보내주신 '노산선생 일대기'를 보고 불충하게도 오래 잊고 있었던 노산 선생님이 그리워 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반세기가 훌쩍 넘은 옛날 학창시절에 노산 선생님의 외우이신 '인간국보' 무애 양주동 교수님께 영수필 강의를 들었던 추억까지 오버랩되었다.

     

    개교 115주년을 맞은 모교 동국대학교- 나의 재학시절, 언제나 국문과 여학생들이 몰려와서 성황을 이뤘던 강의실 풍경이 그리워진다. 그 때 한 강의실에서 수업 받았던 친구들과 모교에서 다시 만나 교가라도 한 번 불러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꿈같은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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